라면, 먹어도 되나 안되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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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우리 나라에 과연 식품 위생 행정이 있는가. 해방 이후 반세기가 다 되도록 각종 부정·불량·불법 식품의 피해로 시달려온 우리 국민들이 지금까지도 일관되게 품고 있는 의문이요, 불만 불평인 것이다.
이런 불신과 우려에 이번 「공업용 우지」 사건은 기름을 붓고 불을 지른 결과를 가져온 셈이다.
그것은 언젠가는 속 시원히 우리 식생활의 위생 환경을 정비하기 위해 거쳐야 할 과제로 잘 된 일이다.
식품 위생 행정의 전담 부서인 보사부는 이번 사건이 터지자 처음에는 수입되는 우지가 국내에서 정제의 과정을 거치기 때문에 서류 검사만으로 통관되고, 정제 후의 제품에는 아무런 하자가 없이 기준과 규격에 적합한 것이었다고 밝혔다. 그러나 불과 이틀만인 6일 국회 보사위에서 보사부 장관은 문제의 우지 원료가 미국에서 비식용으로 분류하고 있기 때문에 식용으론 부적합한 것이라고 밝혔다.
결국 지금까지는 수입 우지가 식품용으로 적합하지 않다는 것을 알고서도 눈을 감아주었다는 말이 되고, 그렇지 않다면 최소한 적합성 여부를 식별할 능력은 없었거나 정확한 기준마저 없다는 얘기가 된다.
조우지가 비록 정제의 과정을 거친다고는 하나 그것이 원천적으로 식용이 아닐 경우 제조나 보관·수송의 과정이 식용에 알 맞는 방법과 절차를 밟지 않음으로써 인체에는 적합하지 않은 여러 불결·불순 요인이 포함될 여지는 충분히 있다고 본다. 만약 정제를 하면 식용유와 똑같은 순도의 제품이 나온다면 당초 우지 등급을 15단계까지 매길 필요가 없었을 것이 아닌가. 대중적 다 소비 식품의 원료를 정제 과정만 믿고 관능 검사나 이화학 검사를 생략하고 서류로만 통관을 허용했다는 사실은 국민 건강을 책임진 정부 관서의 첫 관문이 무방비 상태였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더군다나 우리 국민이 라면을 먹기 시작한지 30여년이 지나온 동안 이에 사용되는 원료에 대해 문제를 삼는 일이 없다가 갑자기 제조업자가 줄줄이 구속되는 사대가 나는데에 국민들은 의아와 분노를 금할 수 없다. 처음부터 명확한 기준과 규격을 마련해서 국민의 건강과 위생을 지켜야 했고 원료에 문제가 있으면 이를 시정하는 것도 보사 당국이어야 마땅할 것이다.
보사부는 가만히 있는데 검찰이 갑자기 원료의 부적합성을 들어 업자를 구속하는 사태로 급전하는 것을 보면서 행정의 난맥상이 이 지경에 이르렀나, 개탄을 금할 수 없다.
이번 수사 대상이 된 4개 식품 업체는 도하 각 신문에 즉각 일제히 광고를 내고 생산된 제품이 절대 안전하다는 것을 강조하면서 검찰의 수사에 정면으로 반박하고 나서 주목을 끌고 있다.
「물의를 일으켜 송구스럽다」는 말 이외에는 자기들 사업 행위의 정당성과 제품의 무해성 역설, 수사 당국에 대한 강력한 유감 표명으로 일관하고 있다.
또 영양 학계에서는 비식용 우지를 식용으로 사용한데 대한 업자들의 부도덕성을 지적하면서도 제품의 유해성 여부는 단언할 수 없고, 일본에서도 70년대에 비슷한 문제가 발생했으나 공업용 우지라 해도 고 등급품을 사용하여 정제를 잘 할 경우 문제가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는 사례를 들어 성급한 결론을 경계하고 있다.
우리는 부도덕하고 비양심적인 업자의 국민 건강 침해 행위를 두둔할 의사는 추호도 없다. 그렇다고 도덕적인 문제를 전문 검사 기관의 완벽한 유해성 검사 절차를 거치지 않고 사법적인 방법으로 내닫는 일도 순서가 잘못됐다고 본다.
더군다나 진실을 등한히 한 여론 재판이나 무비판적인 매도에도 동조할 수는 없다.
도대체 국민들은 어느 쪽을 믿어야 하는가. 이번 사건을 명확히 해명해 줄 주체는 어느 기관인가, 참 어처구니가 없다.
보사부와 검찰·학계·업계·소비자 단체 등의 대표들로 합동 조사단을 구성해 객관적이고 정밀한 조사를 통해 이번에 문제된 우지가 국민 건강에 미치는 유·무해 여부와 정도를 명쾌하게 규명할 것을 촉구한다. 앞으로 라면을 먹어도 되는지, 안 먹어야 하는지를 국민에게 분명히 밝혀 달라는 것이다.
어찌 라면뿐인가. 우리는 지금까지 부정·불량 식품 공해의 불안에서 한시도 해방된 적이 없다. 농약 콩나물, 양잿물 참기름, 물감 칠한 생선, 톱밥 고춧가루, 대장균 냉면, 수구레 설렁탕, 폐기물 족발, 농약 채소·과일 등 이루 헤아릴 수 없을 만큼 허다한 식품 공해 속에 지속적으로 시달려왔다.
그때마다 식품 위생 행정의 불비와 태만을 지적하고 개선을 촉구해 왔음에도 불구하고 그 위험은 사라지지 않고 있다. 지난 9월부터 채소와 과일에 대한 잔류 농약 기준을 정하고 이를 어긴 제품은 폐기 처분한다는 규정이 발동됐으나 지금까지 한 건도 적발·폐기됐다는 소식이 없다.
식품과 약품의 제조 일자 표기제를 없애고 유통 기간만 표기키로 한 예처럼 정책의 후퇴도 서슴지 않는다.
정부 시책의 이러한 불비와 파행은 이번 사건을 계기로 시정되어야 한다. 1인당 국민 소득이 1백 달러 수준에도 못 미쳤을 때부터 안고 있는 문제점들이 국민 소득 4천 달러를 넘는 지금까지도 상존 하고 있는 것이다. 부정 식품이라도 없어서 못 먹던 시절은 지났다. 이제는 식품의 질, 생활의 질을 따질 때에 이르렀다.
식품의 안전 문제는 외국 농산물의 개방 사태에 직면해 더욱 절박해지고 있다.
정부는 지금부터라도 이를 전담할 전문 인력을 충분히 양성·확보하고 검사·실험 시설을 확충해 국민을 식품 공포로부터 해방시키는데 정책의 최우선 순위를 두기를 간절히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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