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하다는 모 한의원, 알고보니 약도 한의사도 가짜

중앙일보

입력

'성기능 특효약을 판다'는 입소문이 돌았던 서울 강남의 한 한의원이 무자격자에 의해 운영됐던 데다 수백만원짜리 보약에는 발기부전 치료제 성분이 들어 있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검찰은 이 약에 대한 시료 분석 결과를 제보받고 수사에 착수했으나 '가짜 한의사'가 행방을 감춰 수사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14일 관계당국에 따르면 최근 특급 부유층 고객들 사이에서 성기능 강화에 특효라고 소문났던 서울 강남의 D 한의원의 한약에 다량의 발기부전 치료제 성분이 포함돼 있다는 사실이 지난 6월 검찰에 제보됐다. 그러나 이 때를 전후해 이 한의원은 폐업했고 '가짜 한의사'도 자취를 감췄다.

무자격자나 일부 극소수 한의원에서 발기부전치료제 등 양약 성분을 불법 사용하고 있다는 소문이 나돌았으나 실제 확인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관련 자료에 따르면 이 약에는 1회 복용분에 63.1mg의 타달라필(미국 제약사 릴리의 발기부전치료제 '시알리스'의 주성분)이 포함돼 있었다. 이는 타달라필 1회 정량(20mg)의 3배가 넘어 치명적인 부작용이 가능한 수준이다.

D 한의원 고객들 사이에 '김 박사'로 알려진 가짜 한의사는 2년1개월간 진짜 한의사 3명을 차례로 명목상 원장으로 고용, 월급을 주면서 자신은 카이로프랙틱(척추지압요법)을 통해 성기능 저하를 호소하는 사람들에게 이 한약을 팔아온 것으로 알려졌다.

폐업 당시까지 7개월간 명목상 원장으로 있던 한의사는 연합뉴스와 통화에서 "'김 박사'가 파는 약을 찾는 환자들이 있어 그 쪽으로 보낸 적은 있으나 그 약에 발기부전치료제가 불법 첨가돼 있던 사실은 지금까지 전혀 몰랐다"고 말했다.

그는 "알선업체 소개로 작년 11월 그 한의원에서 일하기 시작했으나 올 1월부터는 월급조차 받지 못했다"며 "지난 4월께부터 '김박사'의 출근이 뜸하더니 내게 약재상의 외상 독촉이 오고 임대료도 밀려 폐업했다"고 설명했다.

'가짜 한의사'는 한의원 안에 마련된 별도 공간에서 유흥업소 등을 통해 소개 받았거나 내원 환자들에게 '특별 비방' 약이라며 약값 200만원을 온라인으로 송금토록 하고 며칠 뒤 환자 집으로 택배하는 방식으로 한약을 팔아온 것으로 전해졌다.

의사 처방을 받아야 살 수 있는 정품 발기부전치료제는 한알에 2만원 정도 하지만 중국이나 인도 등에서 파는 동일 혹은 유사성분 약은 의사 처방 없이도 한알에 500원이면 살 수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연합뉴스가 현장을 확인한 결과 문제의 한의원이 입주해 있던 서울 서초구 대로변 건물 2층에는 한의원 간판은 걸려 있었으나 집기 등 시설은 모두 치워진 채 문이 굳게 잠겨 있었다. 이 건물 관리자는 "한의원이 폐업한 사실을 모르는 환자들이 요즘도 많이 찾아온다"고 말했다.

검찰 관계자는 "'어디에서는 무엇을 섞어서 판다더라'는 제보가 많이 들어오고 있으나 모두 확인해 보지는 못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같은 불법행위가 적잖이 이뤄지고 있을 가능성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대한한의사협회 관계자는 "환자들이 한약을 지어 먹을 때는 반드시 전문가와 상의해야 하며 한의원을 찾을 때는 자격 여부를 확인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서울=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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