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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어는 병이 없다

중앙일보

입력

수영은 힘든 운동이다. 초보자라면 1개월은 꼬박 매달려야 겨우 물에 뜰 수 있다. 네가지 영법을 구사하려면 1년 이상 걸린다.

수영은 번거롭다. 수영장까지 가야 하고, 옷을 입었다 벗었다 해야 한다.

수영은 돈이 든다. 강습료에다 수영장 이용료까지 합치면 월 10만원은 족히 든다.

수영은 무료하다. 철저하게 혼자 해야 한다. 시합이 아닌 다음에야 승패도 없고 동료도 없다.

수영은 위험하다. 어설픈 실력으로 물놀이를 하다 익사하는 경우가 많다. 눈병이나 귓병에 걸릴 수도 있다.

그런데도 수영은 위대한 운동이다. 가장 원초적 운동이기 때문이다. 인간은 누구나 어머니의 양수 속에서 9개월 동안 꿈틀대며 지내다 태어난다. 의학적으로도 수영이 좋은 이유는 많다. 수영을 해야 하는 다섯가지 이유를 짚어보자.

첫째, 수영은 체력을 보강하는 탁월한 운동이다. 체력의 본질은 심장과 폐의 순발력과 지구력이다.

순발력이란 단기간 폭발적인 힘을 발휘하는 능력이며, 지구력이란 장시간 오래 버티는 힘이다. 수영은 다른 육상운동에 비해 물의 저항을 받게 되므로 같은 동작을 하더라도 두세 배 이상 힘이 든다.

그러나 물의 부력으로 심장과 폐가 힘을 덜 받는 데다 인체가 수직보다 수평을 유지하므로 혈액순환은 두세 배 이상 빨라진다. 즉 팔과 다리는 힘들지만 심장과 폐는 빨리 산소를 공급하므로 순발력과 지구력이 급속히 향상된다.

둘째, 수영은 미용에 좋다. 수영은 단위 시간당 4백~5백 칼로리로 가장 열량 소모가 많다. 웬만한 구기운동의 두 배 가까이 된다. 물의 저항을 이겨야 할 뿐 아니라 물을 통해 체열을 빼앗기기 때문이다.

수영은 운동으로 과열된 인체를 물로 식힐 수 있어 장시간 운동이 가능하다. 웬만한 실력만 갖추면 서너 시간 이상 쉬지 않고 수영장을 왔다갔다 할 수 있다.

비만의 원흉인 지방은 단시간 고강도 운동보다 장시간 저강도 운동에서 잘 빠진다. 지방은 탄수화물과 단백질이 모두 고갈된 다음이라야 비로소 소모되기 때문이다. 수영이야말로 살빼기에 가장 좋은 운동인 셈이다.

셋째, 수영은 관절에 좋다. 물의 부력으로 둥둥 떠 있기 때문이다. 땅에선 동작 하나하나마다 무릎이나 허리 등 관절에 체중이 가해지지만 물에선 충격이 거의 전달되지 않는다.

관절이 나쁜 사람에게 가장 좋은 운동은 관절을 움직이되 관절 자체엔 아무 힘이 가해지지 않고 관절 주위 근육과 인대만 튼튼하게 해 주는 것이다.

땅에선 특수한 재활기계를 이용하지 않으면 불가능하지만 물에선 얼마든지 가능하다. 땅에선 당장 부상으로 직결될 동작이나 자세에도 물에선 관절 손상이 거의 없다.

넷째, 수영은 중력 질환에 좋다. 중력 질환이란 인간이 직립보행을 하면서 얻게 된 질환이다. 치질과 허리디스크, 다리정맥류 등이 대표적 질환이다.

말 그대로 서 있기 때문에 생기는 병으로 네발짐승엔 없다. 서 있게 되면 심장에서 나온 혈액이 발에서 정맥을 타고 거꾸로 중력을 거슬러가며 올라와야 한다.

동맥에 비해 얇은 벽을 가진 정맥의 입장에선 고역이 아닐 수 없다. 시달리다 못한 정맥이 주머니처럼 불거져 튀어나오는 병이 바로 치질과 다리정맥류다.

치질이 항문 주위 정맥이 튀어나온 질환이라면 다리정맥류는 종아리 주위 정맥이 튀어나온 질환이다. 허리디스크도 서 있기 때문에 척추가 수직으로 놓이는 것이 원인이다. 수직이므로 중력에 의해 위에서 아래로 척추 사이 디스크가 눌리며 튀어 나온다. 수영은 수평운동이므로 중력을 반감시킨다.

다섯째, 수영은 물에 빠지는 등 비상사태시 생명을 건질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다. 1948년 10월 북해에 비행선이 추락해 수백명의 사상자를 낸 대형사고가 발생했다.

영국의 철학자 버트런드 러셀도 승객이었다. 당시 76세인 러셀은 노구를 이끌고 차가운 바다를 헤엄쳐 나와 노르웨이 구조대에 구조됐다.

그가 수영을 몰랐다면 50년 그의 노벨문학상 수상이 물거품으로 돌아갔음은 물론 인류는 70년 98세까지 살면서 그가 남긴 숱한 저작들을 만나지 못했을 것이다.


도움말 주신 분 : 서울대체육과학연구소 백진호 교수, 전 수영국가대표 이지현 선수, 서울아산병원 진영수 교수, 일산백병원 양윤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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