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대 간암예방센터 소장 한혜원 교수 "과도한 철분은 몸에 좋지않아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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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도한 철분은 몸속 유해 산소의 작용을 증가시키고 유전물질 DNA의 손상을 초래해 암환자에게 좋지 않습니다. 철분제는 물론 철분이 많은 식품을 피해야지요. 쇠고기 등 육류는 생선보다 4배,간은 12배나 철분이 많습니다."

'피 뽑기+여자 의사+교회'.

전혀 관계가 없어 보이는 단어들의 조합이지만 재미동포라면 누구나 쉽게 연상하는 인물이 있다.

미국 필라델피아 소재 토머스 제퍼슨 의대에서 간암예방센터 소장을 맡고 있는 한혜원(韓惠媛.66.여)교수다. 그는 주말마다 미국 전역의 교회를 돌며 손수 동포들의 혈액검사를 해주고 있다.

1983년부터 지금까지 간염 조기 발견을 위해 2만여명의 동포로부터 피를 뽑아 이중 B형 간염 항체가 없는 8천여명에게 간염 예방주사를 놓았다. 간호사가 아닌 의사가 이처럼 많은 사람을 대상으로 피를 뽑은 것은 유례가 없는 일. 최근 강연차 내한한 韓교수는 자신의 피 뽑기 사업을 '숙명'이라고 말한다.

"몸으로 때우면서 일하느라 건강 돌보기에 소홀한 해외동포들에게 가장 무서운 병이 간염과 거기서 발전하는 간암입니다. 대부분 방치하고 있다가 갑자기 간암으로 숨지는 경우가 많지요."

"한국인의 간암은 대부분 B형 간염에서 비롯됩니다. 그러나 피검사를 통해 일찍 발견해 약물요법 등 적절한 치료를 받게 되면 예방이 가능합니다"

과거와 달리 최근 수년간 간염 바이러스의 증식을 효과적으로 억제하는 제픽스 등 치료제가 속속 개발됐기 때문이다.

그는 61년 서울대 의대 졸업 후 63년 혼자 미국으로 유학가 하버드대 의대에서 수련 과정을 마쳤다.

韓교수는 B형 간염 바이러스를 발견해 노벨상을 수상한 블럼버그 박사와 필라델피아 소재 암연구소에서 17년간 B형 간염을 연구했다. 88년 이래 토머스 제퍼슨 의대에서 정교수로 재직 중이다. 지금까지 2백여편의 논문을 발표하고 99년 미국 B형간염 재단으로부터 우수 지도자상을 수상하는 등 세계적 간 학자로 자리매김한 韓 교수가 국내 보균자를 위해 내놓은 간염 극복 비결은 무엇일까.

정기적으로 검진받고 과로하지 말며 술을 마시지 말라는 등의 내용은 국내 의사들의 이야기와 대동소이하다. 다른 점이 있다면 철분의 피해를 강조한 것. 韓교수는 세계 최초로 동물실험을 통해 과도한 철분이 암세포의 증식을 초래한다는 사실을 밝혀내 '캔서 리서치' 등 학술잡지에 논문을 게재한 바 있다.

간이 나쁜 사람은 간을 먹거나 쇠고기를 많이 먹어야 한다는 상식은 잘못이라는 것이다.

B형 간염을 갖고 있는 사람 중 혈액검사에서 철분 수치가 높을 경우 치료 목적의 방혈(放血)을 실시하기도 한다. 팔뚝에서 주사기를 통해 혈액을 4백~5백㎖ 빼내는 것이다.

간염 보균자가 아닌 보통 사람이라면 이래서 헌혈이 좋다. 좋은 일도 하고 건강도 얻을 수 있기 때문.

韓교수는 "정기적인 헌혈로 피를 빼내주면 체내 철분이 감소해 암을 예방하는데 도움이 된다"며 "여러 가지 실험을 통해 철분을 줄이는 것이 간암.대장암.유방암 등 예방에 좋은 것으로 밝혀졌다"고 강조했다. 오페라를 좋아해 5천여장의 음반을 소장하고 있다는 韓교수는 의사와 변호사인 두 딸을 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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