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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립보행하는 인간들만의 병, 치질

중앙일보

입력

마지막 4cm가 문제다

사람의 소화기관이 끝에 이르면 직장이 피부와 연결되는 3-4cm 정도의 관이 있는데 이것을 항문, 보다 정확하게는 항문관(anal canal)이라고 한다. 이 부위는 혈관이 그물처럼 퍼져 있고 또한 신경이 잘 발달되어 있다.

치질(hemorrhoids)이란 다름 아닌 이 항문주위의 정맥혈관이 부어 올라 몽우리가 생긴것이며, 신경이 몹시 밀집되어 있기 때문에 심한 통증을 초래하게 된다. 증상이 나타나면 불쾌하거나 불편함은 말할 것도 없고(제대로 앉을 수도 없어 엉거주춤한 자세를 취하던 기억을 되살려 보자), 심하면 화장실 가기가 겁이나는 지경에 이르게 된다.

치질의 올바른 치료를 위해서는 항문의 구조를 정확하게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항문은 태생학적으로 장을 만드는 내배엽과 피부를 만드는 외배엽이 만나서 형성되는데, 그들이 만나는 부위인 치상선(이빨을 다문 것 같은 형태)을 경계로 상부 2cm는 직장에서, 하부 2cm는 피부에서 유래하고 있다. 치상선(pectinate line)에는 10여 개의 항문선이 개구하고 있는데, 여기서 치루의 원인이 되는 농양이 발생한다.
치상선 상부는 대장의 연장이므로 자율신경이 분포하여 항상 무의식중에 항문을 닫게하는 내괄약근을 지배한다. 통증을 느끼지 못하며(이 부위에서 생기는 암치질은 원칙적으로 통증이 없다), 점액이 분비되는 장 점막으로 덮여 있다.

치상선 하부는 피부의 연장이므로 피부와 같은 편평상피로 덮여있으며, 지각신경이 밀집해서 분포하므로 숫치질이나 치열과 같은 병변이 있으면 심한 통증을 초래한다. 의식적으로 항문을 조일 수 있는 외괄약근을 둘러싸고 있다.

통상 성인 3명 중 1명이 치질을 경험한다고 하며, 40대이상 성인남녀의 약 절반 가량이 이런 증상을 나타낸다고 한다. 특히 임신이나 출산 직후에 발생률이 매우 높다.

항문주변 혈관의 혈액순환 장애가 주범

애당초 중력에 의해 피가 밑으로 쏠리기 때문에 항문주위의 혈관은 울혈, 즉 피가 잘 돌지 않고 고여있기가 쉬울 수밖에 없다. 즉, 네발로 기는 동물들은 심장과 항문의 높이가 비슷하기 때문에 별문제가 없지만, 똑바로 서서 다니는 인간들의 경우 심장과 항문의 높이가 다르기 때문에 그에따른 압력의 차이로 치질이 생기게 된다.

변비가 있으면 배변시 무리한 힘이 항문쪽으로 몰리기 때문에 직장 정맥압의 상승과 울혈의 원인이 되며, 잦은설사 역시 직장 정맥압을 상승시키게 된다. 나쁜 배변습관(용변 볼 때 너무 오래 앉아있거나 지나치게 힘쓰기) 혹은 장시간 서있거나 앉아 있는 자세로 인해 직장 정맥내 울혈을 초래하기 쉽다. 임신후기에 이르면 직장 정맥이 압박을 받게 되므로 혈액순환이 원활치 못하게 되며, 유사하게 간경화나 복부종양 또는 직장암 등에 의해 혈액순환이 나빠지면 항문 끝에서 정맥의 흐름이 차단되어 항문 정맥의 압력이 올라가게 되고 결국 정맥이 부어오르게 된다.

고추, 후추, 겨자, 카레 등의 향신료는 직접적으로 장과 항문 부위를 자극하며, 지나친 음주, 주변 공기가 아주 차갑거나 심부전 등 혈액순환이 원활하게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에서도 일어날 수 있다. 이외에도 무거운 물건을 들거나 하복부에 지나친 힘을 주는 운동 등에 의해 항문에 영향이 미칠 수 있으며, 유전적으로 직장 정맥이 약한 가계에서 치질의 발생율이 높다고 한다. 이밖에도 나이가 들면 전신 조직의 탄력성이 떨어지고 혈관이 늘어나 치질이 생길 수도 있다.

치질의 3대 종류 - 치핵, 치루, 치열

치질이란 우리가 흔히 암치질, 수치질이라고 부르는 치핵을 중심으로, 항문주위의 염증으로 인해 고름이 잡히는 치루 및 항문 아래쪽의 피부가 약간 찢어지는 치열 등을 총칭하는 말이다. 이들 세가지가 전체 치질 질환의 80%를 차지하고 있다.

1. 암치질(내치핵; internal hemorrhoids)
치질로 병원을 찾는 환자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대표적인 암치질은 항문관의 중간인 치상선의 상부에 발생하며, 지각신경이 분포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통증은 거의 없다. 반면 배변시 출혈이 심하게 나타나는데, 새빨간 선홍색이 특징이다. 심해지면 오랜 기간 혈액이 정체되어 늘어난 정맥총이 원상회복이 안되고 탈출될 수도 있다(탈항). 암치질은 심한 정도에 따라 4가지로 분류한다.

  • 1도 : 배변시 출혈이 있으나 통증은 없다.치핵이 항문 밖으로 빠져 나오지 않는다.

  • 2도 : 배변시 치핵이 일시적으로 밖으로 빠져나갔다가 항문괄약근을 조이면 저절로 되돌아간다.

  • 3도 : 배변시 탈출된 치핵이 저절로 되돌아가지 않고 손으로 밀어 넣어야 들어간다.

  • 4도 : 치질이 항상 밖으로 빠져 나와 있다. 항문괄약근으로 조여도 들어가지 않으며, 통증이 매우 심하다.

2. 수치질(외치핵; external hemorrhoids)
수치질은 치상선의 하부, 즉 항문 바로 바깥쪽에 부드러운 쿠션처럼 생기는데, 출혈은 없으나 신경이 분포해 있어 심한 통증을 느낀다. 치질 내에 혈전이 형성되면(혈전성 외치핵) 갑작스럽고 격렬한 통증이 나타난다.

3. 치열(항문열상; anal fissure)
치열이란 항문관의 치상선에서 아래쪽 피부가 약 1cm 정도 찢어지는 것으로 가느다란 궤양이 생기면서 괄약근이 노출되는 염증성 질환이다. 배변시 심한 통증이 있으며, 간혹 약간의 출혈이 수반된다. 가장 큰 원인은 변비의 굳은 변에 의하여 열창이 생기는 것으로, 보통 1주 정도에 자연 치유가 된다. 배변시의 심한 통증을 두려워하여 배변을 기피하면 변비가 심해지고 따라서 더욱 변이 굳어지므로 치열의 상태를 악화시키는 과정이 되풀이됨으로써 만성화될 수 있다. 병의 속성상 젊은 여성들에게서 다발한다.

4. 치루(항문루; anal fistula)
피로, 설사 등으로 인해 변의 일부가 치상선으로 열려있는 항문선으로 역류하여 급성 염증을 일으키고 고름이 형성된다. 치열과는 반대로 남성에게서 많은데, 특히 유아치루는 절대적으로 남아에게서만 발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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