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상 못구한 환자 4명 사망···메르스 땐 유족 패소, 코로나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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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1일 경북 청도군 청도대남병원에서 입원 중인 환자가 다른 병원으로 이송되고 있다. 코로나19 확진 판정으로 이날 청도대남병원에서 부산대병원 음압병동으로 이송된 환자 1명이 음압병동으로 옮겨진 뒤 사망했다. [뉴스1]

지난달 21일 경북 청도군 청도대남병원에서 입원 중인 환자가 다른 병원으로 이송되고 있다. 코로나19 확진 판정으로 이날 청도대남병원에서 부산대병원 음압병동으로 이송된 환자 1명이 음압병동으로 옮겨진 뒤 사망했다. [뉴스1]

"격리병상 여유가 없었던 점 등을 비춰볼 때 삼성서울병원이 감염병 주의의무를 위반했다고 보기 어렵다"

병상 못구해 사망한 코로나 환자, 4명으로 늘어

2015년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 사태 당시 사망한 80번 환자 A씨의 유가족이 지난달 18일 삼성서울병원과 서울대병원에 패소한 손해배상 소송 1심 판결문에 나오는 문장이다. 1일 기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코로나19) 사태로 병상을 못구해 사망한 환자가 4명으로 늘어난 상황에서 주목받는 법원의 판단이기도 하다.

코로나 판결에 기준될 메르스 판결 

악성림프종이란 기저질환을 앓던 중 메르스에 감염돼 사망한 A씨의 판결문에는 ▶신종 감염병과 기저질환 합병시 의료진의 치료 재량 범위 ▶격리병동 부족시 격리대상자 치료에 대한 의료기관의 과실 여부 등 현재 코로나19 현장에서 논란이 되는 여러 쟁점에 대한 법원의 판단이 담겨있다. 중앙일보는 A씨 판결문 중 격리병상과 기저질환 문제에 대한 법원의 판단을 집중적으로 살펴봤다.

메르스 80번 환자의 유가족(왼쪽)과 유가족의 법률대리인인 이정일 변호사(오른쪽)가 지난달 18일 오후 서울중앙지법에서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 손해배상 청구 소송 재판을 마친 뒤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메르스 80번 환자의 유가족(왼쪽)과 유가족의 법률대리인인 이정일 변호사(오른쪽)가 지난달 18일 오후 서울중앙지법에서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 손해배상 청구 소송 재판을 마친 뒤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메르스 80번 환자 유가족의 소송  

A씨의 아내와 아들은 "2015년 A씨가 메르스에 감염돼 기저질환인 악성림프종 치료를 제때 받지못해 사망했다"며 이듬해 정부와 삼성서울병원, 서울대병원을 상대로 총 3억원을 청구하는 소송을 제기했다. A씨는 삼성서울병원에서 메르스에 감염됐고, 서울대병원에서 메르스와 악성림프종 치료를 받던 중 사망했다.

법원은 소송 4년만인 지난달 18일 1심 결과를 내놓으며 유가족 청구액의 7% 수준인 2000만원만 배상액으로 인정했다. 재판부는 A씨 메르스 감염(사망은 책임 없음)에 대한 정부의 과실을 일부 인정했고 병원측 책임은 없다고 봤다.

2015년 송재훈 삼성서울병원장(왼쪽 넷째)등 삼성병원 관계자들이 병원 내 메르스 감염에 대한 사과 기자회견을 하고있는 모습. [중앙포토]

2015년 송재훈 삼성서울병원장(왼쪽 넷째)등 삼성병원 관계자들이 병원 내 메르스 감염에 대한 사과 기자회견을 하고있는 모습. [중앙포토]

격리병상에 대한 법원의 판단

코로나19 사태에서 가장 논란이 되고있는 의료기관의 격리병상 판단부터 살펴보자. 1일까지 대구·경북 지역의 격리병상 부족으로 제때 치료를 받지 못하고 사망한 코로나 환자는 전체 사망자 23명 중 4명에 달한다. 대구 확진자 2700여명 중 1600여명이 집에서 입원 순서를 기다리고 있다.

A씨의 유가족은 "1번 환자로부터 메르스에 감염된 14번 환자가 폐렴 증상을 보였음에도 삼성서울병원이 제때 격리하지 않아 같은 응급실에 있던 A씨가 메르스에 감염됐다"며 삼성서울병원의 과실을 주장했다. 하지만 법원은 정부 통보 전까지 삼성서울병원이 A씨의 메르스 감염을 몰랐던 점, 폐렴 환자는 원칙상 격리해야 하지만 당시 병원에 격리병상 여유가 없었던 점 등을 볼 때 삼성서울병원에 과실이 없다고 판단했다.

여유 격리병동 여부에 대한 법원의 판단은 코로나19 확진 뒤 병상 부족으로 자택에서 대기 중 사망한 환자들의 사례에도 적용될 수 있는 부분이다. 법조계에선 코로나로 감염된 각 환자가 치료를 요청하는 과정에서 정부와 의료기관의 중대한 과실이 발견되지 않는 한 병상 부족만으로 환자 사망에 대한 법적 책임을 묻기는 쉽지 않다고 보고있다. 재경지법의 한 현직 판사는 "법에 앞서 이런 억울한 죽음을 막을 정부의 적극적 대응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전국‘코로나19’확진자 현황.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전국‘코로나19’확진자 현황.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기저질환에 대한 법원의 판단

메르스에 감염돼 사망한 A씨의 기저질환에 대한 법원의 판단도 주목할 부분이다. 코로나19 사망자 대부분이 기저질환을 앓고 있었던 환자들이어서다.

A씨는 메르스 치료 과정에서 기저질환인 악성림프종이 악화돼 사망했다. 유가족은 "A씨가 메르스 감염 가능성이 사실상 없는 상태에서도 서울대병원으로부터 불합리한 격리조치를 당해 기저질환 치료 시기를 놓쳤다"고 주장했다. 서울대병원 의료진이 A씨의 림프종보다 메르스 치료를 우선한 것 역시 과실이라 주장했다.

법원은 A씨가 병원 내에서 격리될 당시 메르스 감염 가능성이 낮았던 점, 메르스 감염으로 A씨의 항암치료 계획에 차질이 생긴 점, 서울대 의료진이 림프종보다 메르스를 우선해 치료한 사실은 모두 인정했다.

지난달18일 오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31번째 확진자가 입원한 대구시 서구 중리동 대구의료원의 음압 병동의 문들이 굳게 닫힌 가운데 의료진만 오가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달18일 오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31번째 확진자가 입원한 대구시 서구 중리동 대구의료원의 음압 병동의 문들이 굳게 닫힌 가운데 의료진만 오가고 있다. [연합뉴스]

항암치료 차질 인정했지만 

법원은 하지만 당시 정부의 격리 해제 기준과 메르스 우선 치료의 필요성, 서울대병원의 림프종 치료계획 등을 검토할 때 서울대병원의 과실을 묻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법원은 특히 "치료 방법이 없고 의료진의 치료 경험이 부족한 메르스라는 감염질환이 (기저질환과) 합병된 경우라면 의료진도 매우 어려운 결정을 해야한다"며 의료진의 치료행위에 대한 재량범위를 폭넓게 인정했다. 코로나19도 메르스와 같이 백신이 없는 새로운 감염병이다. 법원은 향후 코로나 사태와 관련해 제기될 소송에서도 치료행위에 대한 의료진의 재량범위를 다른 의료 사건보다 폭넓게 인정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A씨 유가족의 법률대리인인 이정일 변호사(법무법인 동화)는 "A씨 사망의 원인은 메르스 감염 외에는 찾기 어렵다"며 "1심 판결은 납득하기가 어려워 항소할 방침"이라 말했다. A씨의 아내도 1심 선고 뒤 "2015년에 받았어야 했던 사과인데 2020년에도 이런 결과를 받아 절망적"이란 심정을 토로한바 있다.

박태인 기자 park.tae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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