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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씨 자작극? 산모의 복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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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서울 반포동의 프랑스인 집단거주 지역 '서래마을'에서 발생한 '영아 시체 유기 사건'이 미스터리 속으로 빠져들고 있다. 아기들의 아버지는 프랑스인 C씨(40)로 판명됐다. C씨는 사건 발생 장소인 빌라의 집주인이며, 이 사건을 경찰에 처음 신고한 인물이다. 따라서 미스터리의 단초를 푸는 열쇠는 '아기 아버지' C씨가 쥐고 있다. ▶어떤 여성과 성관계를 맺었는지 ▶문제의 여성과 임신 이후 어떤 관계를 유지했는지 ▶어떤 경로를 통해 자신의 집 냉동고에 아기들의 시체가 있게 됐는지를 설명할 수 있는 인물은 C씨밖에 없는 상황이다. C씨가 벌인 자작극이거나 공범 관계에 있다는 가설이 힘을 얻는 이유다.

1 C씨, 자기 아이인 줄 몰랐나

사건 초기 경찰은 신고자 C씨에 대해 특별한 혐의점을 두지 않았다. 그러나 C씨는 아기의 아버지로 확인됐다. C씨는 자신의 아기가 누군가의 배 속에서 자라고 있음을 이미 알고 있었을 수 있다. C씨의 아기를 임신한 여성이 C씨를 상대로 모종의 요구나 협박을 하면서 갈등을 빚었을 수도 있다. 이를 피하기 위해 프랑스로 휴가를 떠나고 한국으로 되돌아와 경찰에 신고하는 각본을 스스로 만들었다는 추론이 가능하다. 아기들 시체는 C씨가 프랑스 출국 이전에 냉동고에 넣었거나, 그의 프랑스 체류 시 C씨의 묵인 아래 누군가 이를 도왔다는 얘기가 된다.

그러나 풀리지 않는 의문도 있다. 은폐를 목적으로 했다면 시체를 밖에 몰래 내다 버리거나 야산에 매장하는 게 일반적이다. 왜 굳이 집 안에 시체를 남겼는지 현재로선 알기 어렵다. C씨는 6월 29일 가족과 프랑스로 휴가를 떠났다 이달 18일 '회의 참석차' 혼자 한국에 돌아왔다. C씨는 신고 후 사흘간 국내에 머물며 경찰의 DNA 채취에도 협조했다. 이는 의심을 사지 않기 위해 DNA 채취에 응함으로써 수사 방향을 흐리는 효과를 노렸을지도 모른다. 그러곤 26일 프랑스로 가버렸다.

2 아빠는 집주인 … 엄마는 누구

현재까지 드러난 여성은 두 명이다. C씨의 필리핀인 가정부 L씨(49)와 C씨의 집에서 나오는 것이 목격됐다는 14세가량의 백인소녀다.

L씨는 C씨의 가족보다 이틀 이른 지난달 27일 필리핀으로 출국한 뒤 한 달 만에 한국으로 돌아와 경찰 조사를 받았다. L씨는 경찰에서 "1년 넘게 C씨의 집에서 일했지만 일주일에 한 차례 네 시간 정도 일해 C씨의 얼굴은 두 번밖에 못 봤다"고 진술했다. 경찰은 L씨를 산모라고 판단할 별다른 혐의점을 찾지 못했지만 DNA를 확보해 아기들과 대조키로 했다.

백인소녀에 대해선 신원조차 파악하지 못한 상태다. 이 소녀가 C씨의 집에 들어가려면 보안카드를 가진 사람과 함께 들어가거나, 안에서 누군가 문을 열어줬어야 한다. 백인소녀가 산모라면 C씨가 공모했을 가능성이 있다. 하지만 만삭의 몸으로 쌍둥이까지 임신한 어린 여성이라면 마을 사람들의 눈에 쉽게 띌 수 있다는 점에서 개연성이 높지 않다. C씨와 성관계를 맺은 제3의 여성이 튀어나올 여지가 남아 있다는 것이다.

3 원하지 않는 임신이었나

결백을 주장하는 C씨의 말이 사실이라면 C씨에 의해 원치 않는 임신을 한 여성이 C씨의 집 냉동고에 시체를 넣을 수 있다는 추정이 성립한다. 아이 아버지인 C씨에게 복수하기 위해 일부러 냉동고에 유기했다는 얘기다. 발견 당시 냉동된 상태였던 영아들의 시신은 일부 부패돼 있었다. 집 밖에서 출산해 시간이 지난 뒤 유기했을 수 있다. 누군가의 도움 없이 산모가 집 안에서 홀로 아기를 낳고 곧바로 뒤처리까지 한다는 것은 무리라는 게 산부인과 의사들의 중론이다. 이 경우 C씨의 집을 드나들 수 있는 보안카드를 가진 제3의 인물이 도와야 한다. 지금까지 C씨의 집을 방문한 사람은 C씨의 프랑스인 친구 P씨(47)밖에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 하지만 경찰에 따르면 ▶아기들의 위가 비어 있고 ▶태변이 묻어 있고 ▶탯줄이 제대로 끊어지지 않은 점으로 미뤄 출생 직후 사망했다. 또 집 욕실에서 주방을 지나 냉동고가 있는 뒤쪽 발코니까지 미세한 혈흔 반응이 나타나 집 안에서 출산했다는 추정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집 안에서 낳고 얼마 안 지나 냉동고에 넣었을 거란 얘기다.

4 일란성 쌍둥이는 아니라는데

국과수 관계자는 "일단 일란성 쌍둥이는 아닌 것으로 확인됐다"고 말했다. 이란성 쌍둥이거나 어머니가 두 명일 수 있다는 말이다.

이 관계자는 "쌍둥이치곤 무게가 많이 나간다는 얘기도 나오고 있지만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다"고 말했다.

아버지가 같고 산모가 각각 다른 두 아이가 냉동고에서 동시에 발견됐다는 개연성은 희박하다. 만의 하나 산모가 두 명일 경우 사건의 전모는 더욱 복잡해질 전망이다.

권근영 기자, 유은영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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