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의 집 들어가 웬 쇠파이프 시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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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특수기동대 김진흥 수경이 시위 현장에서 무전연락을 하고 있다. 박종근 기자

"느닷없이 남의 집을 차지하고 쇠파이프를 휘둘러대는 시위는 처음 보았습니다." 포항지역 건설노조원들이 포스코 본사를 점거한 가운데 15일부터 포항으로 '출장' 나온 서울특수기동대 73중대 김진흥(23) 수경. 노조원들의 자진해산으로 21일 사태가 마무리됐으나 지난 며칠이 그에게는 2년여 근무기간 중 가장 힘든 시기였다. 연일 계속되는 시위 진압에 몸은 지칠 대로 지쳤고 전에 볼 수 없던 폭력적인 시위에 충격을 받은 것이다.

그가 소속된 중대원 100여 명이 포항에 도착한 것은 포스코 본사가 노조원에 점거당한 이틀 뒤인 15일 오전 3시. 서울 신라호텔 앞에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반대 시위대와 9일부터 맞닥뜨리던 중 갑자기 이동 명령이 떨어졌다. 14일 밤 부대에 들러 속옷과 세면도구만 챙긴 뒤 경부고속도로를 타고 밤새 달려왔다.

임무는 포스코 본사를 봉쇄하는 것이었다. 전날 제대로 잠을 자지 못한 상태에서 근무와 휴식을 두 시간마다 번갈아 했다. 휴식시간에는 앉기만 하면 꾸벅꾸벅 졸았고 오후 10시쯤 몸은 파김치가 됐다. 옷에서는 쉰내가 풍겼다. 잦은 출동으로 빨래할 시간이 없어 2~3일씩 옷을 입기 때문이다.

경주 황성체육관 마룻바닥에서 자정 무렵 새우잠을 청했다. 포항에 전경 8000명이 배치되면서 포항에서는 숙소를 확보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나마 수면 시간은 오래가지 못했다. 16일 오전 3시 기상해 황급히 완전무장하고 포스코 정문에 배치됐다. 노조원 가족들이 몰려와 시위를 한다는 정보가 있었기 때문이다.

오후에는 형산로터리에서 집회를 마친 노조원 1500여 명이 거리행진하는 것을 저지하는 데 투입됐다. 현장은 순식간에 쇠파이프와 돌, 방패와 경찰봉이 난무하는 아수라장으로 변했다.

무전병으로 부대의 맨앞에 서는 그는 "최루탄을 쏘지 못하고 방어만 해야 하는 상황에서 쇠파이프와 돌이 날아다니는 걸 보고 공포를 느꼈다"고 말했다. 이날 중대원 4명을 포함해 전경과 노조원 90여 명이 크고 작은 부상을 당했다.

그는 "노조원들의 입장이 이해될 때도 있지만 옆에서 피를 흘리며 쓰러지는 동료를 볼 때는 억울하고 분하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자신의 주장을 내세우는 것도 중요하지만 절차와 방법이 옳지 못하면 정당성을 확보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단국대 첨단과학학부 1학년을 마치고 입대한 김 수경은 시위 현장에 나설 때 혼란스러움을 느낀다고 한다. 엇갈리는 주장이 팽팽하게 맞서 타협점을 찾지 못하는 것을 보면 안타깝다는 것이다.

"포항에서 노동탄압을 규탄하는 노조의 시위와 경제.사회 단체의 파업중단 촉구 시위가 동시에 열리는 것을 목격하면서 우리 사회의 갈등과 반목의 깊이가 얼마나 큰지 알 수 있었습니다."

제대를 18일 남긴 그는 "비를 피해 쪼그려 앉은 채 도시락을 먹을 때 어머니가 해주시는 된장찌개가 그리웠다"며 "후배들이 다치지 않고 무사히 군대 생활을 끝낼 수 있기를 기원한다"고 말했다.

포항=황선윤 기자<suyohwa@joongang.co.kr>
사진=박종근 기자 <jokepar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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