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낙연 제안 ‘지소미아-화이트 빅딜’로 소개한 日…여론 떠보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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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낙연 총리가 작년 8월 방한한 일한친선협회 가와무라 다케오 회장과 대화하고 있는 모습. [연합뉴스]

이낙연 총리가 작년 8월 방한한 일한친선협회 가와무라 다케오 회장과 대화하고 있는 모습. [연합뉴스]

이낙연 국무총리가 고위급 외빈과 만나 했다는 발언에 대해 양측이 서로 상반된 주장을 펼치는 이례적 상황이 펼쳐지고 있다. 지난달 31일부터 3박 4일 일정으로 한국을 방문했던 가와무라 다케오(河村建夫) 일ㆍ한의원연맹 간사장(전 관방장관)이 3일 귀국 뒤 한국의 한ㆍ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ㆍ지소미아) 종료 결정과 일본의 화이트 국가(안보우호국) 관련 결정을 동시에 철회하자는 취지의 제안을 받았다며 ‘이낙연안’을 소개하면서다.

가와무라-총리실, 서로 다른 설명

3일 오전부터 가와무라 간사장의 발언이 일본 언론 보도를 통해 퍼지자 국무총리실은 오후 늦게 “사실과 다르다”고 보도해명자료를 냈다. 가와무라 간사장은 “이 총리가 양국의 조치 두 가지를 세트로 함께 원점으로 돌리자는 제안을 했다”고 말했는데, 총리실은 “이 총리는 ‘일본 측이 취한 조치들을 원상회복하면, 한국도 지소미아 종료를 재검토할 수 있다’는 기존 입장을 재차 설명했을 뿐”이라고 반박했다.
총리실 설명대로라면 가와무라 간사장이 이 총리와의 비공개 면담 내용을 상대방과 협의도 없이, 그것도 잘못 공개한 것이 된다. 곧이어 이런 가와무라 간사장의 이야기를 들은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가 “(강제)징용 문제 해결이 우선”이라며 이를 거부했다는 보도까지 나온 것을 고려하면, 이 자체로 엄청난 외교 결례다.

왜곡이라면 큰 외교 결례

하지만 가와무라 간사장은 정치인이긴 하지만 관방장관을 지내 각료로서 경험도 풍부한 거물급 인사다. 그의 발언을 단순한 실수로만 보기는 어려운 셈이다.
양 측이 밝힌 제안은 언뜻 보기엔 비슷해 보인다. 하지만 가와무라 간사장이 전한 제안은 일종의 ‘빅 딜’이다. 지소미아 종료 결정과 화이트 국가 조치롤 1대1로 한꺼번에 되돌리는 것이다. 반면 총리실의 설명은 부당한 조치를 취한 일본이 먼저 달라진 태도를 보여야 한다는 데 방점이 찍혀 있다. 이 총리는 일본의 화이트 국가 조치 시행 전날인 지난달 27일에도 같은 제안을 공개적으로 했다.

가나스기 겐지 일본 외무성 아시아대양주국장이 지난달 29일 오후 한일 국장급 협의를 위해 서울 종로구 외교부 청사로 들어서고 있다. 김정한 외교부 아시아태평양국장과 가나스기 겐지 국장은 이 자리에서 한국 대법원의 강제징용 판결 문제와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 북한 정세 등 양국간 현안을 논의한다. [뉴스1]

가나스기 겐지 일본 외무성 아시아대양주국장이 지난달 29일 오후 한일 국장급 협의를 위해 서울 종로구 외교부 청사로 들어서고 있다. 김정한 외교부 아시아태평양국장과 가나스기 겐지 국장은 이 자리에서 한국 대법원의 강제징용 판결 문제와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 북한 정세 등 양국간 현안을 논의한다. [뉴스1]

빅 딜 vs 일본이 먼저 움직여라

가와무라 간사장이 이런 차이를 오해했을 수도 있지만, 그게 아니라면 의도적으로 다른 메시지를 일본에서 전파한 셈이다. 대일 소식통은 “이는 마치 한국이 일본과 협상의 시작점에 대한 명분을 만들기 위해 지소미아 관련 조치를 취한 것처럼 보일 소지가 있다. 그렇게 되면 협상이 시작될 경우 우위를 점하는 쪽은 일본”이라고 설명했다. 실제 가와무라 간사장은 한국 측 인사들이 일본과의 협상을 위한 내부 협의를 시작했다고도 전했다.
이와 관련, 총리실 관계자는 “완전히 왜곡됐다. 이 총리가 그런 식으로 이야기하지 않았다”며 “‘일본이 먼저 조치를 취한다면’이란 조건부로 이야기했는데 그쪽에서 ‘맞바꾸자’는 식으로 나왔다”고 전했다.
이는 바꿔 말하면 이 총리와 가와무라 간사장 간 면담 자리에서 문제를 대화로 풀기 위한 여러 해결책에 대한 논의가 오갔다는 뜻으로 이해할 수도 있다. 이 총리 측과 합의 여부와 별개로, 가와무라 간사장이 한국과 일본의 여론을 떠보기 위해 일부러 ‘빅딜’ 안을 꺼냈다는 추론도 가능하다.

총리실 “그쪽이 ‘맞바꾸자’고 해”

 정부도 지소미아가 만료되는 11월 22일까지는 지소미아가 완전히 끝난 게 아니라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또 결정 직후부터 “파기가 아니라 종료”라고 강조, 11월 22일 전에 상황이 바뀔 가능성에 대한 여지를 남겼다. 외교 소식통은 “어차피 빅딜이란 것은 지리한 협상이 이어지다가도 결정권자가 정치적 결단만 내리면 한꺼번에 모든 것을 테이블로 올려 해결하는 파격적 방식”이라면서도 “하지만 결국 양국간 신뢰 회복이 관건이기 때문에 강제징용 문제 등에서 양국의 노력이 없으면 현실적으로는 이 방안도 힘들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정부도 11월 전 변화 여지 남겨

한편 가와무라 간사장의 방한 기간 중 그를 면담한 강창일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중앙일보와의 통화에서 “가와무라 간사장에게 다른 부분은 한국 정부가 특별법을 만들어서라도 보상할 테니 소송을 낸 소수 피해자들에게는 일본 기업이 보상하라고 촉구했다. 일단 대화의 테이블에 앉아야 한다고 강조했다”고 말했다.
유지혜ㆍ이유정 기자 wisepe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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