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감세 덕에 세금 더 잘 걷히는 미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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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미국에서 예상보다 세금이 잘 걷히고 있다고 한다. 2006 회계연도의 첫 9개월(2005년 10월~2006년 6월) 동안 지난해보다 2000억 달러가 더 걷혔다. 기업들이 장사를 잘해 법인세가 26% 늘었다. 덕분에 고질병인 재정적자도 3000억 달러 이내로 줄어들 전망이라고 한다.

그동안 조지 W 부시 행정부는 법인세.소득세 부담을 덜어주는 감세 정책을 써왔는데, 경제가 잘 돌아가자 오히려 전체 세수가 늘어난 것이다. 뉴욕 타임스는 "경제성장에 힘입어 세금이 많이 걷혔다"고 분석했다. 재정적자가 여전히 부담스러운 수준이고 계속 줄어들지에 대해 전문가들의 의견이 엇갈리지만, 미국 경제가 모처럼 '감세→경기 활성화→세수 증가→재정적자 축소'라는 선순환의 실마리를 찾은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헨리 폴슨 신임 재무장관은 "경제성장을 촉진하고, 재정지출을 억제하겠다"고 말했다. 앞으로도 소비와 투자를 촉진하는 성장 중심의 경제정책을 펴고, 정부도 '작은 정부'를 지속하겠다는 것이다.

미국의 이런 변화를 바라보는 우리는 부러우면서도 착잡하다. 우리는 어떤가. 국민은 세금 낼 일을 걱정하고, 그런데도 세수는 부족하고, 경기는 침체되고, 재정은 부실해지는 악순환에 빠져 있다. 정부는 '세금은 쥐어짜면 나온다'고 생각하는지 모르지만, 세금 부담이 늘면 개인은 소비를 줄이고, 기업은 생산과 투자를 줄인다는 게 경제학의 기본이다. 하물며 봉급생활자를 '봉'으로 알고, '세금 폭탄'운운하며 겁을 주는데야 아무리 강심장이라 해도 선뜻 지갑을 열 개인이나 기업이 어디 있겠는가.

한국은행에 따르면 자산 70억원 이상 5180개사가 금고에 쌓아둔 현금이 무려 34조원에 달한다. 싱가포르 정부는 삼성전자에 법인세를 15년간 면제해 주기로 하고, 800여 명을 고용하는 합작공장을 유치했다. 싱가포르 정부는 앉아서 국민에게 '괜찮은 일자리'를 선물한 셈이다.

상황이 여의치 않으면 정부라도 씀씀이를 줄여야 하는데 사정은 그렇지 않다. '큰 정부'론을 신주단지 모시듯 하면서 공무원을 2만3000명이나 늘리고, 뒷감당이 걱정되는 대형 국책사업을 겁 없이 벌이는 게 이 정부다. 들어오는 돈보다 쓰는 돈이 많을 수밖에 없다. 이 구멍을 메우기 위해 지난해까지 3년간 발행한 적자국채가 14조5000억원이고, 올해부터 2009년까지 매년 7조~8조원씩 발행해야 한다.

하지만 정부는 경제에 별문제가 없다며 기존 정책을 고수하겠다고 버티고 있다. 성장도, 분배도 잘 안 되는 길로 치닫고 있는 것이다. 세금 뜯어 복지를 늘리겠다는 분배 우선 정책과 이것이 필연적으로 동반하는 큰 정부로는 경제가 살아날수 없다. 세금 꼬박꼬박 내는 개인과 기업을 존중하고, 이들이 소비하고 투자할 마음이 생기도록 선순환의 물꼬를 터야 한다. 정부 스스로 허리띠를 졸라매야 하는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