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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원·검찰·경찰 '인맥 쌓기' 수백만원씩 든 봉투 뿌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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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법조브로커 김홍수씨가 한때 운영했던 서울 강남의 한 가구점(上). 고급 카펫과 침구.가구류 등을 판매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씨가 작성한 2005년 다이어리. 자신이 접촉한 인물과 일시.장소.전달 액수 등이 날짜별로 상세히 적혀 있다. 강정현 기자

검찰이 김홍수씨 사건의 결정적 단서를 잡은 것은 올 5월 국회의원 보좌관 출신 김모(40.구속기소)씨의 알선수재 혐의를 조사하면서다. 김씨로부터 "산업은행이 보유한 하이닉스 출자전환 주식 1000만 주를 인수하게 도와 달라"는 청탁과 함께 6억3500만원을 받은 사실을 입증하기 위해 서울구치소의 김홍수씨 방을 압수수색하면서 진정서를 발견한 것이다.

진정서에는 법조인 등에게 금품을 제공했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금품 등의 제공 사실을 적어 놓은 다이어리도 찾아냈다. 지난해 검찰에 구속되기 전까지 7개월간 작성한 2005년도 다이어리에 돈을 준 사람의 이름과 액수 등을 적어 놓은 것으로 전해졌다. 검찰의 수사 진행 상황에 따라 김씨 사건은 대형 법조 비리 사건으로 비화할 가능성이 커진 것이다. 김씨가 청탁한 사건 중 90%가량은 성공했다는 게 검찰의 설명이다.

김씨는 법조인들을 만날 때마다 수백만원이 든 봉투를 몇 개씩 들고 다녔으며, 강남의 유흥업소를 지정해 외상으로 술을 마실 수 있도록 편의를 봐준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자신이 부탁한 사건이 제대로 해결되지 않자 판사와 검사들에 대한 금품수수 사실을 자백한 것으로 전해졌다.

◆ "고법 부장판사 소환 조사"=김씨는 1990년대 초 지인의 소개로 고법 부장판사 J씨를 만나 10년 이상 친분관계를 유지해 왔다. 김씨는 검찰 조사에서 J씨에게 사건 청탁과 함께 금품을 제공해 왔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최근까지 네 차례 검찰조사를 받은 J씨는 혐의를 부인한 것으로 전해졌다. 검찰 관계자는 "수사 대상에 오른 지방법원 부장급 판사 중 일부는 J씨를 통해 김씨와 알게 됐다"고 전했다. 검찰은 그러나 아직 지법 부장급 판사들은 소환조사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김씨는 2004년 7월 조직폭력배가 낀 하이닉스 주식 불법 거래 사건과 관련해 J씨에게 도움을 부탁했다가 거절당한 것으로 전해졌다. 김씨는 지난해 이 사건으로 인해 변호사법 위반 혐의로 구속기소됐다.

◆ "검사에겐 수백만원 건네"=김씨는 2004년 변호사법 위반 혐의로 서울중앙지검에서 수사를 받게 되자 S변호사에게 도움을 청했다. S변호사는 사건을 맡은 K검사의 사법연수원 시절 은사다. S변호사를 통해 K검사와 알게 된 김씨는 이후 검찰 수사관들과도 차례로 접촉했다.

김씨는 "직원들과 식사라도 하라"며 K검사에게 수백만원을 건넸고, K검사는 이를 수사관 등 직원들에게 나눠줬다. 검찰은 김씨로부터 금품을 받은 혐의를 잡고 지방검찰청의 현직 검사 한 명과 부장검사 출신 변호사 두 명에 대해서도 수사 중이다. 변호사들은 현직 시절 금품을 받은 것으로 전해졌다.

◆ "경찰 사조직인 강남팀과 접촉"=김씨는 경찰에도 공을 들였다. 경찰 모임의 술값이나 음식값 등을 부담하는 식으로 접근했다. 그는 지난해 하이닉스 주식 불법 거래와 관련해 서울 강남경찰서에 고소되자 평소 알고 지내던 경찰관을 통해 사건을 맡은 L경정(서울 모 경찰서 과장.대기발령)을 소개받았다. 이들은 '강남팀'이라는 경찰 내 사모임 소속이었다. L경정은 김씨에게 M총경(서울 모 경찰서장.대기발령)과 자신의 학교 후배인 또 다른 경찰관을 소개했다. 이 가운데 M총경은 검찰조사에서 수천만원을 받은 사실이 확인됐다. 이들과는 별도로 2004년 11월 당시 노량진경찰서 김모 경사는 사기 혐의로 피소된 김씨를 조사하는 과정에서 사건을 잘 처리해 주겠다며 1300만원을 받고, 2000만원짜리 외제 카펫을 요구한 혐의로 기소됐다.

장혜수.문병주 기자<hschang@joongang.co.kr>
사진=강정현 기자 <cogit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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