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잇단 폐업에도 "속수무책"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1면

어떻게 하면 석탄산업을 소리 없이 망하게 할 것인가.
다소 과장된 표현이지만 이 말처럼 요즘 석탄산업이 처한 상황을 적절하게 나타내주는 말은 없다.
탄광근로자의 임금인상으로 석탄 값은 올라갈 수밖에 없는 데다 연탄소비는 오히려 크게 줄어 문을 닫는 탄광이 줄을 잇고 있다. 탄광촌 주변의 지역경제는 삭막하기 짝이 없다.
최근 6개월 사이에 8천여 명의 탄광근로자가 이곳을 떠났는데도 전직훈련은 거의 이뤄지지 않고 있다.
연탄은 87년 해방이후 처음으로 소비가 2.7% 줄어든 데 이어 88년2.8%, 올 상반기 중에는 무려 16.2%나 격감했다.
산지에 쌓여있는 석탄만 해도 1백60만t으로 작년 같은 기간보다 78%나 늘었고 전국의 연탄공장 등에는 1천90만t이 쌓여있다. 우리나라 1년 분 소비량의 절반과 맞먹는다.
연탄이 부엌에서 점차 사라지고 있는 것은 86년 이후 원유가격이 하락한데다 소비자들의 소득수준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열효율을 가격으로 따졌을 때 연탄이 경유보다 13%가량 싸지만 연탄재 처리의 불편, 가스중독의 위험 등을 감안하면 오히려 연탄이 훨씬 비싸게 먹히는 것이다.
연탄사용 가구수는 연탄 보일러 형태가 3백30만가구, 새마을 보일러 3백29만가구, 아궁이 1백68만 가구 등 8백29만 가구로 아직도 전체의 78%가 연탄을 사용하는 것으로 나타나 있다. 그러나 이중 가옥구조상 연료전환이 어려운 아궁이 형태를 빼고는 상당 가구가 기름으로 바꿀 채비를 하고 있다고 봐야한다.
상황이 이러한데다 석탄산업합리화에 따라 전국 3백47개의 탄광 중 1백26개의 탄광이 폐광신청을 했고 43개는 이미 휴광중이다. 근로자 수는 작년 말 6만2천명에서 5만4천명으로 줄었고 다른 탄광의 폐광작업이 마무리되면 2만7천명의 실업자가 발생한다.
국내 5대 탄광으로 꼽혔던 대성탄좌 문경광업소의 폐광은 오늘의 석탄산업이 어디로 가고 있는가를 단적으로 말해준다.
대성탄좌는 지난 5월3일부터 1천6백여 명의 근로자들이 43%의 임금인상을 요구하며 파업에 들어가자 경영악화를 이유로 조업 31년만에 폐업을 결정했다.
퇴직금 만해도 6월말 현재 94억원에 이르는데 3년 후에는 1백69억원으로 늘어나고 노조 요구안을 받아들일 때는 추가부담액이 연간 93억원에 이르러 더 이상 조업이 불가능하다는 판단이 섰기 때문이다.
물론 폐업결정에 사회적 비난도 뒤따르고 있다.
대성그룹이 오늘날 10여 개의 계열기업을 거느리는 탄광재벌로 성장하게 된 데는 대성탄좌의 역할이 컸는데 2∼3년간 적자를 봤다고 해서 탄광문을 닫아버리는 것은 말이 안 된다는 것이다.
문경광업소는 근로자와 회사측의 노력으로 문경탄좌라는 이름으로 다시 조업을 재개할 전망이지만 어쨌든 이 회사의 폐업은 다른 탄광재벌에도 관심사가 되고있다.
그렇다고 해서 이제 정부가 막대한 지원금을 줘가며 석탄을 생산할 수만도 없다. 채산을 맞추기 힘들뿐 아니라 어차피 진폐증에 시달리는 근로자들을 위해서도 영세탄광은 문을 닫아야한다는 얘기다.
문제는 폐광에 따른 지역경제활성화대책인데 정부로서도 현재는 묘안이 없는 상태다.
석탄산업합리화에 따라 수년 내에 2백37개의 탄광이 문을 닫고 2만7천여 명이 탄광을 떠나지만 5백만원의 정부융자 외에 퇴직금 등을 합쳐도 1천여만원 밖에 손에 못 쥐는 탄광근로자들이 갈곳이 없는 것이다.
정부가 태백일대를 국민휴양지로 개발하고 광공단지를 조성한다는 등의 계획을 마련해놓고 있지만 도로망·용수확보가 어려워 실효성이 의문시되고 있다.
일본만 해도 50년대부터 석탄산업의 불황이 닥치자 61년 「산탄지역진흥임시조치법」을 제정하고 「산탄지역진홍사업단」까지 만들어 지역경제를 위해 매년 6천억원을 쏟아 부었다.
영세탄광정리에 따른 진통은 불가피하다. 그러나 실직근로자들이 도시영세민으로 떠돌지 않게 하기 위해서는 보다 실효성 있는 전직훈련과 함께, 지역경제활성화대책이 세워져야 할 것이다. <길진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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