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방한 앞두고…시진핑, 김정은 카드 꺼내 선공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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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오는 20~21일 북한을 국빈방문한다고 조선중앙TV 등이 17일 보도했다. 중국 국가주석의 북한 방문은 2005년 후진타오 전 주석 이후 14년 만이다. 지난 1월 중국을 방문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왼쪽)이 시 주석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오는 20~21일 북한을 국빈방문한다고 조선중앙TV 등이 17일 보도했다. 중국 국가주석의 북한 방문은 2005년 후진타오 전 주석 이후 14년 만이다. 지난 1월 중국을 방문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왼쪽)이 시 주석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2월 베트남 하노이에서 열린 2차 북·미 정상회담이 결렬된 뒤 정체 상태였던 한반도가 요동치기 시작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전면전을 벌이고 있는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의 ‘방북 카드’가 발표되면서다. 이로서 한국의 정상회담 ‘러브콜’에 묵묵부답하던 북한은 중국과 손을 잡고 나섰다.

비핵화 방식 등 북·중 밀착 과시 #대미 무역전쟁에 활용 노린 듯 #미국 입장선 달갑지 않은 방북 #북·미 비핵화 협상에 차질 우려

17일 저녁의 방북 ‘깜짝 발표’는 지난 1월 김 위원장이 베이징을 방문했을 때 시 주석을 초청했고, 시 주석이 이에 응했다는 점에서 ‘답방’의 성격이 강하다. 두 정상은 지난 1월 전략적 협력관계를 약속했고, 중국은 북한의 비핵화 방식(단계적, 동시적)과 뜻을 같이하고 있어 이번 방북에서도 이를 재확인할 것으로 예상된다. 일각에선 김 위원장이 자신의 생일(1월 8일)에 중국을 방문했던 만큼 시 주석도 생일(6월 15일)을 기해 방북하는 생일 교차 방문 외교라는 얘기도 있다.

전문가들은 무엇보다도 중국이 미국과 첨예한 무역전쟁을 벌이고 있고, 이달 말 한·미 정상회담이 예정돼 있다는 점에서 시 주석의 평양행은 답방 이상의 의미가 담겨 있다고 지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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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직 정부 고위 당국자는 “북한과 중국은 시 주석의 방중을 사흘 앞둔 17일 오후 8시 동시에 발표했다”며 “이는 사전에 양측이 발표 시간까지 충분히 조율했다는 방증으로, 이달 말 한·미 정상회담에 앞서 북·중 정상회담을 하겠다는 맞불 성격의 선공일 수 있다”고 말했다. 북·중 밀착을 달갑지 않게 보고 있는 트럼프 대통령을 향해 중국의 역할을 과시하면서 중국이 북한이라는 우군을 확보하고 있음을 보여주려는 측면이 강하다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이번 방북은 시 주석에겐 ‘양날의 칼’이 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미국 입장에선 시 주석의 대북 입김을 놓고 비핵화 협상을 진전시킬 기폭제로 여길 수도 있지만, 반대로 무역전쟁에서 더욱 거세게 중국을 압박할 괘씸죄로 여길 수도 있어서다. 이성현 세종연구소 중국연구센터장은 “이번 방북으로 북한이 미·중 강대국 간의 전면전의 카드 중 하나로 쓰이게 됐다”며 “트럼프 대통령을 상대해야 하는 시 주석으로선 김 위원장을 만났다는 게 현 시점에선 최고의 레버리지가 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북한과 ‘직거래’를 원하는 미국으로선 방북이 달갑지는 않겠지만 시 주석이 북한을 일단 대화의 테이블에 앉히고, 일정한 양보를 끌어낸다면 손해 보는 장사는 아니다.

반면 북한과 중국이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와 한·미 정상회담에 앞서 평양 정상회담으로 공동전선을 강화한다면 당분간 한반도의 비핵화 협상은 더욱 어려워질 것이라는 우려가 많다. 다음주 미국이 준비하는 일정은 스티븐 비건 국무부 대북특별대표 방한→28~29일 일본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트럼프 대통령 방한으로 알려져 있다. 이런 상황에서 북한과 중국이 20~21일 평양 정상회담으로 치고 들어오면서 미국이 주도한 순서가 교란됐다. 김현욱 국립외교원 교수는 “방북 사흘 전에 갑자기 발표한 방식 등을 미뤄볼 때 중국이 미국과 전면전을 벌이면서 북한을 대미 카드로 쓰기 시작했다고 보는 게 맞다”며 “북·중 유대감을 끈끈히 하면서 북한을 미국과의 대결에서 활용하겠다는 의도”라고 해석했다. 그래서 시 주석의 대북 레버리지가 비핵화를 위한 레버리지라기보다는 대통령 재선에 도전하는 트럼프 대통령을 향해 북한 비핵화를 무산시킬 수도 있다는 레버리지라는 분석도 나온다.

정용수·전수진 기자 nkys@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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