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또 카드 뿌려 거품景氣 만들건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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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오락가락하는 신용카드 정책을 보면 정부가 경제에 대한 장기 비전이 있는지 의심스럽다. 정부는 카드사들이 현금대출 업무 비중을 50%까지 줄여야 하는 시한을 3년 연장하는 등 카드 관련 규제를 대폭 완화했다. 카드사들이 예정대로 현금 대출을 줄이면 돈이 안 돌아 신용불량자가 늘고, 소비는 위축되고 자금난이 심화되는 등 부작용이 예상되므로 대비한다는 게 정부 측 설명이다.

우리 경제의 문제점인 '거품'은 상당 부분 잘못된 카드 정책의 후유증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정부는 몇 년 전 이번처럼 소비 진작을 통해 경기를 부추긴답시고 카드 사용을 권장했다.

그 결과 경제력이 없는 젊은이까지 마구 카드를 긁어대면서 개인 신용불량자가 양산되고, 카드사는 연체율이 높아져 부실화하는 등 심각한 금융위기가 발생했다. 그래서 정부가 특히 카드 현금서비스에 대한 규제를 강화했는데, 불과 몇 달 만에 이를 완전히 뒤집고 나선 것이다. 몇 달 전에는 이런 문제를 몰랐단 말인가.

성과도 미지수다. 규제를 푼다고 소비가 촉진될 리 만무하고, 시한을 늦춘다고 수입이 없는 실업자들이 빚을 갚을 것으로 막연히 기대하기도 무리다. 반대로 자금 사정에 여유가 생긴 카드사들이 다시 과열 경쟁에 나설 경우 개인과 카드사의 부실만 더 키우게 될 수도 있다.

정부는 소비를 부추긴다고 금리를 내렸지만 경기 회복은커녕 부동산 값만 왕창 올린 지난 5월의 교훈을 잊었단 말인가. 이번 조치는 특히 일관성 없는 정부 정책에 대한 불신감을 더욱 키우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이런 점을 감안할 때 이번 조치는 부실의 해결 시기를 뒤로 미룬 데 불과하며, 결과적으로 득보다 실이 크다.

신용불량자 문제는 개인별.금융기관별 부채 재조정 프로그램 등을 통해 풀어야 한다. 보다 근본적인 해결책은 일자리를 많이 만들어 돈을 벌어 갚게 하는 것이다. 경기 활성화도 기업이 투자를 늘릴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하고 경제 정책의 일관성을 유지하는 등 정공법을 통해야지 이런 식의 임시방편과 편법은 옳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