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달 퇴임하는 마하티르 말聯 총리] 마하티르는 누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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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마하티르 총리의 코드는 '근대화'와 '반서구화'다.

그는 팔 것이라곤 고무와 파인애플 등에 불과했던 열대 우림의 말레이시아를 정보기술(IT) 산업의 전진 기지로 탈바꿈시켰으며 철강.자동차 생산국으로 성장시켰다. 그러면서도 이슬람식 가치를 강조, 말레이인.중국인.인도인 등 다양한 민족으로 구성된 국민을 강력한 리더십으로 통합해 성장의 발판으로 삼았다.

1997년 외환위기 때는 "미국.유럽 등 서구 환투기꾼들의 농간"이라며 맞서 세계적 주목을 받았다. 정경유착적 경제구조가 낳은 필연적 산물이란 서구적 시각을 온몸으로 거부한 것이다. 그는 국제통화기금(IMF)의 처방을 뿌리치고 독자적으로 고정환율제.외환 유출입 규제 정책을 주도해 외환위기를 수습했다.

마하티르의 '마이 웨이'는 16세 때 '대동아공영'을 내걸고 말레이 반도에 들어온 일본인의 군 규율과 질서의식을 접하면서 비롯됐다. 아시아 사람이 결코 서구인에게 뒤지지 않는다는 것을 실증적으로 체험한 것. 회고록 '아시아의 뉴딜' 에 따르면 그는 영국 식민지 시절 사춘기를 보내면서 갖게 된 서구인에 대한 열등감을 극복하는 해법을 일본에서 찾았다고 한다.

이때의 충격은 그의 세계관 형성에 큰 영향을 미쳐 이후 '룩 이스트'(일본을 배우자)정책, 아시아 국가만의 경제협의체(EAEC) 창설 구상을 낳게 됐다.

싱가포르 최고 학부인 에드워드7세 의대를 졸업한 마하티르는 졸업 후 무료 의료봉사 활동을 하다 64년 하원의원에 당선됐다. 경제 성장을 이끈 공로로 22년간 장기 집권하면서 그는 냉혹한 마키아벨리주의자의 면모도 감추지 않았다.

98년 오른팔로 꼽히던 안와르 이브라힘 전 부총리가 당내 소장파를 규합해 민주화 개혁을 요구하자 부정부패와 동성애 등의 혐의로 매장시켜 버릴 정도로 권력 기반에 대한 어떠한 도전도 용납하지 않았다.

정용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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