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발과 밀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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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이탈리아 사르디니아섬의 한 농부집에 느닷없이 어떤 사나이가 뛰어들었다. 때 마침 집을 보던 소년은 살려달라고 애원하는 그 사람을 보고 몹시 당황했다. 그는 몸까지 다친듯 괴로워하는 표정이었다.
금방 그를 뒤좇아온 한 무리의 헌병들이 그의 행방을 물었다. 도망 다니는 사나이는 분단 이탈리아를 통치하는 외국 군주에 저항해 싸우고 있는 게릴라였다. 헌병 상사는 회중시계를 꺼내 보이며 소년을 유혹했다. 마음이 흔들린 소년은 그 사나이의 숨은 곳을 손가락질했다.
바로 그때 집에 돌아온 소년의 부모가 이 광경을 목격했다. 아버지는 분노한 눈빛을 감추지 못하며 그의 외아들을 냇가로 데리고 갔다. 잠시 후 총소리가 들렸다.
이 얘기는 가곡 『카르멘』의 작가 「메리메」가 쓴 『마테오 파르코네』라는 콩트의 줄거리다.
밀고를 부도덕하게 여기는 것은 동양에서도 마찬가지다. 우리 나라의 인조는 대역을 음모한 남편을 고발한 내연의 처에게 오히려 큰 벌을 내렸다. 정정이 어지러운 시절인데 인조는 밀고를 장려하기 보다는 엄하게 다스렸다. 그는 관전을 축낸 아버지의 죄를 알아내려고 그 아들을 고문한 정승판서를 파면시키기도 했다.『논어』 에는 양을 훔친 아버지를 고발한 아들을 꾸짖는 대목이 나온다. 아버지와 아들은 허물을 서로 숨겨주는 부자 상은의 윤리를 오히려 칭찬한 것이다.
중국에선 「용은」이라는 제도가 있었다. 부모나 남편, 또는 스승이나 상사의 죄는 모르는 체해도 문제삼지 않은 것이다.
오늘 우리 나라는 조국 분단의 현실에서 부고지죄를 법에 명시하고 있다. 물론 범법자의 친족에게는 용은의 길을 조금 터놓긴 했지만 간첩 혐의자는 가차없이 고발해야 한다.
요즘 서경원 의원의 북한 밀행 사실을 놓고 부고지죄가 논란을 빚고 있다. 그 대상이 된 종교인, 당 간부들, 신문 기자가 앞으로 어떤 조치들을 받을지 금하다.
대법원 판례로는 간첩의 아내에게 부고지죄를 인정한 경우가 있었다. 「분단의 현실」이라는 논리로는 있음직한 일이다.
그러나 사람 사는 동네에서 인지상정의 윤상을 외면하기는 쉽지 않은 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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