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어져 가는 두 김씨 "반목 골"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3면

6공 출범 후 1년 가까이 비교적 손발을 잘 맞추던 양 김씨가 지난 봄 중간 평가 연기 이후부터 매사에 반대로만 나가더니 최근에는 자리를 함께 하는 것 조차 꺼릴 정도로 다시 악화됐다.
김영삼 민주당 총재의 방소 결과를 논의키 위해 23일로 예정되었던 3야당 총재 회담이 이같은 미묘한 양자관계로 인해 결국 연기되고 말았다.
최근 일련의 상황으로 보아 양자 사이의 골이 점점 더 깊어가고 있는 느낌이다.
이 같은 두 사람 간의 관계로 3야당 공조 체제가 앞으로 제대로 가동될지 우려된다.
지난 몇 달간 양김 총재의 행각을 더듬어보면 둘 사이의 거리가 얼마나 벌어지고 있는지극명하게 알 수 있다.
또 그것이 단순한 감정 대립 차원만이 아닌 점도 분명하다.
공교롭게도 두 사람은 거의 모든 쟁점에서 꼭 반대되는 입장을 취해오고 있다.
정치 현안인 중간 평가와 5공 청산 문제가 그 단적인 예다.
지난봄 김영삼 총재가 중간 평가 실시를 촉구하며 정권 타도를 외칠 때 김대중 총재는 중간 평가 연기를 수용하여 타협 노선을 택했다.
반면 최근에는 김대중 총재가 6개월 시한 유보 조건을 제시하여 중간 평가를 통한 정권 종식 투쟁을 선언한데 반해 김영삼 총재는 『중간 평가는 없을 것으로 안다』는 말과 함께 청와대 회담에서도 이 문제를 거의 양해해 준듯한 인상이다.
5공 청산 문제도 청와대 회담에서 김영삼 총재가 핵심 인사 처리를 거론은 했지만 지극히 형식적인 듯이 보이는 반면 김대중 총재는 『정호용씨에 대한 공직 사퇴 요구는 더 이상 물러설 수 없는 마지 노선』임을 강조, 대조적 자세를 보이고 있다.
지난 3월 노-김대중 회담을 통해 김대중 총재가 타협의 국면으로 정국을 이끌어 가려 할 때는 김영삼 총재측에서 「노-김대중」밀약설을 퍼뜨리는 것 같더니 이번에는 노-김영삼 회담결과를 놓고 묵계설이 퍼지는 등 반대로 김대중 총재 측에서 똑같은 거부 반응을 보이고 있다.
최근 외교·안보 등 몇 개의 예민한 쟁점에서도 두 사람은 정반대의 견해를 피력했다.
김대중 총재가 『이제는 주한 미군 감축을 긍정적으로 검토할 때』라고 한데 반해 김영삼총재는 이번 방미 중 『주한 미군 존재는 한미 양국을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며 계속 주둔을 강조했다.
통일 문제를 놓고도 김대중 총재는 종전의 주장인 공화국 연방제보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오스트리아식 중립화 통일 방안을 제시한데 반해 김영삼 총재는 방소시 허담과의 회담에서 보여주었듯이 정부의 점진적 통일정책을 수용하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
대학생들의 평양 청년축제 참가문제를 놓고도 김영삼 총재는 정부의 입장을 지지한 반면 김대중 총재는 학생들을 보내야 한다는 원칙에 입각하여 전대협 학생들과 정부와의 중재에 나서기도 했다.
이 와중에 김대중 총재는 구설수에 말러 『앞으로 초당 외교라는 말을 꺼내지도 못하게 하겠다』고 한 반면 김영삼 총재는 청와대 회담에서 초당외교를 다짐했다.
이와 같이 사사건건 두 사람이 반대로만 치닫는데는 그럴만한 이유가 없지 않다.
우선 두 사람 사이에 2O여년간 지속되어 온 라이벌 의식이 아직도 여전하게 지속된다는 점을 무시할 수 없다.
한 사람이 부각되면 다른 한사람은 뒷전으로 처져야 하는 음양의 숙명적 관계 때문에 어떤 때는 논리적인 바탕에서가 아니라 감정의 차원에서 무조건 거꾸로만 가는 경우도 없지 않다는 느낌을 준다.
따라서 둘간의 관계는 쉽게 감정 대립으로 번져 시비가 있을 때마다 「사쿠라」등 험한 소리들을 주고 받는다.
그러나 이러한 감정의 차원보다 두 사람간의 정치 노선이 점차 명확히 드러나고 있는데도 원인이 있다.
한때 방황(?)했던 김영삼 총재는 최근 들어 온건 보수 입장을 뚜렷이 하며 중산층을 겨냥하고 나선 듯 한데 반하여 김대중 총재는 지금까지 모호했던 개혁주의 성향을 좀더 부각시키고 있는 듯 하다.
두 김씨가 상반된 입장을 취하는데 가장 큰 요인으로 작용하는 것은 정국 구도를 둘러싼 현실적인 이해관계의 상충이다.
정국과 관련하여 한사람이 정권과 밀착되면 다른 한 사람은 멀어질 수밖에 없고 멀어진 쪽에서는 「타도·투쟁」등을 외칠 수밖에 없게되어 있다.
노-김대중 회담 후에는 김영삼 총재가 튀어나가더니 노-김영삼 회담 후에는 김대중 총재가 반발하고 있는게 그 좋은 예다.
두 사람 모두 자신이 상정한 대권을 향한 정국 구도대로 풀어나갈 듯이 보일 때는 타협쪽을 강조하다 이것이 어긋나면 돌아서는 것이다.
5공 청산 과정에서는 두 사람간의 이해관계가 맞아 떨어져 근1년간 협조체제를 유지할 수 있었으나 대권을 겨냥하는 시기가 가까워 올수록 경쟁 관계의 두 사람은 점점 더 사이가 벌어질 가능성이 높다는 관측이다.
최근 김대중 총재는 5공 핵심인사 처리를 놓고 외로운 싸움이 예상되자 『3당 협조 체제가 깨져도 우리 길을 갈 수 밖에 없다』는 단호한 자세를 보이고 있다.
반면 김영삼 총재는 『이제는 시야를 밖으로 돌릴 때』라면서 더 이상 과거문제로 정국을 소란스럽게 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밝히고 있다.
이런 양자간의 대결은 정계 개편과 개헌론이 나오면 더 첨예하고 민감해질 것으로 볼 수 있다.
김대중 총재가 「국민의 뜻이라면 내각제도 검토해볼 수 있다」는 유연성을 보인데 비해 대통령제에 집착하고 있는 김영삼 총재는 개헌론에 냉담하다.
그러나 이들이 근본적으로 노 대통령과의 밀착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사랑다툼을 하는 것은 아니다. 이들은 오히려 정계 개편과정에서 민정당 세력이 어느 일방으로 흐르지 못하도록 견제해 주려는 속셈이 강하다.
따라서 노 대통령이나 민정당이 경성으로 정국운용을 함으로써 야당의 입지가 좁아질 때 두 사람은 다시 협조할 것이 분명하다.
또 14대 선거가 가까워오면서 양 김씨 통합에 대한 여론이 비등해지거나 지난번 동해시 후보 매수 사건 때 처럼 둘 중 한사람이 위기에 처할 경우 숙명적인 공존관계를 의식하여 잠시 협조할 가능성도 높다.
결국 두 김씨의 이합은 누구도 예측할 수 없는 사안이 아닌가 여겨진다. <문창극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