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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한 미군 철수 논의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주한 미군 철수 문제가 서울과 워싱턴에서 다시 일기 시작했다. 그 발단은 미 상원 군사위 재래식 병력소위「칼·레빈」위원장의 현지 답사 보고서에서 비롯됐다.
「레빈」위원장은 주한 미군은 1개 사단 1만명만 미국의 대한안보 공약의 상징으로 남겨두고 나머지는 철수하되 보유 장비는 한국에 보관시킬 것을 제의했다.
철수 개시 시기와 방법에 대해 그는 우선 소규모부터 철수를 개시하고 상황에 따라 감축규모를 늘려나가는 방식을 제시했다.
서울에서는 김대중 평민당 총재가 이에 호응하여 『미 상원에서 제기되고 있는 주한 미군 감축문제를 우리도 상당히 긍정적인 면에서 검토해야 한다』고 말했다.
미군 철수론이 워싱턴에서 거론될 때, 그것은 주로 해외 군사비 부담과 전쟁 위험의 감소를 이유로 제기되며 서울에서 거론될 때는 주로 남북문제·통일문제와 관련하여 제기된다. 우선 워싱턴 쪽의 거론 근거를 볼 때 주한 미군을 위한 군사비가 단순히 한국만을 위해 지출되고 있는 것인가를 살펴봐야 한다. 그것은 동아시아의 국제간 세력 균형을 위한 부담일 뿐이며 그 균형 양상에 변화의 조짐은 있되 변화가 이루어진 것은 아니다.
또 전쟁 위험이 줄어든 점도 주한 미군주둔 그 자체가 그 위험성을 억제해 왔고 북한의 전력이나 대남 정책에 기본적 변질이 없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남북관계, 통일문제와 관련해서는 주한 미군이 남북관계 개선에 장애가 된다는 전제가 성립될 때 비로소 철수론에 설득력이 생긴다. 미군이 존재하기 때문에 대화에 지장이 있다는 것은 논리의 교란이다.
미국 스스로가 남북 화해를 불원·방해하지 않는 터에 주한 미군이 남북 화해에 방해가 된다는 것은 북측의 일방적인 정치공세일 뿐이다.
주한 미군은 언젠가 철수해야 한다. 단지 철수문체는 현실적으로 냉정하게 다루어야지 즉흥적 감정으로 논의될 문제는 아니라고 본다.
중요한 것은 미군이 실제로 어떤 기능을 하고 있고, 미군이 철수할 경우 어떤 문제가 뒤따르느냐는 점이다.
미군은 지난 4O년 동안 북한의 위협을 저지하는 중요한 억지력으로 작용해 왔다. 그 역할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따라서 미군이 떠날 경우 많은 어려운 문제들이 제기된다. 그 힘을 메우기 위해 우리가 지불해야 할 인적·물적 부담은 막대하다.
국방부가 국회에 제출한 보고서에 따르면 주한 미군이 철수할 경우 이에 상응하는 대체 전력을 5년 이내에 확보하기 위해서는 우리가 방위 비를 60% 증액하여 GNP의 8%로 할당해야하고, 사병의 현역 복무기간을 지금의 30개월에서 50개월로 연장해야 한다고 밝혔다.
물론 남북간의 상호 감군이 이루어진다면 그만한 대체 전력이 불필요하겠지만 인도적 문제에 관한 대화도 부진한 것으로 미루어 감군 합의까지는 요원한 일이다.
그때까지는 우리도 배에 상응한 힘을 확보하고 있어야 함은 말할 나위 없다. 또 그렇기 때문에 성급하게 미군이 철수했을 때 예상되는 심리적인 불안상태와 그로 인한 경제·사회생활의 위축도 고려돼야 한다.
따라서 주한 미군 철수에 대한 논의는 이런 현실을 충분히 고려하면서 국가안보를 저해하지 않는 범위 안에서 신중히 전개돼야 한다. 감정을 앞세우거나 무책임한 주장은 경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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