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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안문과 광주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5면

중국 배경의 6·4천안문사태는 불가피하게 우리의 5·18광주사태를 떠올리게 한다.
두사건은 민주화개혁을 요구한 비무장 민간인의 시위를 군이 강제진압하는 과정에서 빚어졌다는 공통점이 있다.
물론 양국의 체제가 다를뿐만아니라 그때의 우리상황과 오늘의 배경상황이 같을수 없고 군의 성격과 대응조치에 있어서도 우리와 배경을 결코 비교할순 없지만 사태초기의 공식발표나 돌아가는 형편이 어쩌면 그렇게 서로 비슷한지 놀라울 지경이다.
중국정부측은 4일새벽의 참극이 있은후 이틀이 지난 6일에야 원목대변인을 통해 사태에 관한 최초의 공식발표를 했다. 그는 1천4백명, 또는 수천명이 죽었다는 외신보도와 달리 『군인5천명, 폭도2천명이 부상하고, 사망자는 군민합쳐 약3백명, 행방불명은 군민합쳐 약4백명인데 이중 학생은 23명이다』라고 했다.
9년전 서울의 계엄사는 사태발생 3일후인 5월21일 첫공식발표를 통해 이날 오전7시 현재의 집계로 군경5명과 민간인 1명이 사망했고 부상자는 군경30명에 민간인숫자는 집계되지 않았다고 밝혔었다.
첫공식발표가 사태후 이틀 또는 사흘후에나 나오고, 그것도 군측 피해가 강조돼있는 점에서 매우 흡사하다. 또 80년 한국의 공식발표가 「소수의 폭도」와 「불순분자및 간첩」을 사태의 주원인으로 규정한것처럼 북경발표는 시위대를 「반혁명분자」 「폭도」라고 불렀다.
나중에 광주희생자수가 1백70명으로 공식발표된 것을 생각할 때 중국정부가 앞으로 희생자수를 어떻게 발표할지는 두고 볼 수 밖에 없다.
더욱 흡사한 것은 공식정보전달체계가 마비된채 걷갑을 수 없이 유언비어가 난무한다는 점이다. 9년전 광주에도 그렇게 유언비어가 많더니 외신을 보면 등소평사망설·이붕피격설·요인망명설등 확인안되는 보도들이 쏟아져 나오고 사망자수도 1만명설까지 나와 아직은 누구도 정확히 파악할수 없는 형편이다.
또 가관인 것은 광주의 경우 사실이 아닌 것으로 밝혀졌지만 「경상도병력투입설」이 있더니 북경에서도 이번에 일을 저지른 27군병력의 대부분이 중국변방의 소수민족출신이라는 보도가 나왔다.
이처럼 광주를 연상케하는 천안문사태를 보면서 중국의 1당독재정권이 우리가 9년이나 광주문제로 고통울 받고있음을 한번이나 생각했던들 천안문의 비극은 저지르지 않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문득해보게도 된다. 그리고 「광주사태」가 마침내 「광주민주화운동」이 되고「불순분자」 또는 「폭도」로 규정된 사람들에 대해 국가예산으로 보상금을 주고 위령탑2을 세운다는 사실을 이제라도 중국정권은 아는것이 좋겠다는 생각도 든다.
나라와 체제가 다르고 9년의 시차가 있는데도 두사태에서 보게되는 공통점은 한마디로 체제가 대중의 욕구를 수용하는 탄력성을 갖지 못하면 비극이 오고, 그 비극에 대해 체제는 결국 대가를 지불하고야 만다는 사실이다.
중국정권이 40년간이나 그 국민을 공산주의와 모택동사상으로 얽어매고 1당독재의 모두체제로 지배해왔지만 더많은 사람들의 더큰 자유와 복지를 향한 의지를 언제까지나 억누를 수 없음을 천안문사태는 극적으로 보여준 것이다.
어떤 정권이나 체제도 그런 대중의 의사를 순차적으로 체제에 반영하는 탄력성을 보일수 있어야 폭발이나 파국을 면할 수 있지, 힘으로 누르기만 한다면, 끝내 비극을 피할수 없는 법이다. 최근 폴란드가 자유노조와 타협하며 체제를 변화시킨 것이나 헝가리의 개방은 체제 탄력성을 발휘한 성공적 케이스라 할만하다. 그러나 중국정권은 대중의 욕구를 수용하는 이런 체제 탄력성을 보여주지 못함으로써 천안문의 비극을 불렀다.
이번에 비록 잔혹한 살상으로 상황을 일정기간 제어할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이번 사태로 중국의 강경보수파 정권은 이제 중국국민의 짐이요, 사슬이 되고 역사적으로 극복되는 과정만 남게됐다.
더 강한 힘으로 누르는 통치는 종국적으로 더 강한 폭발을 가져온다는 것이 역사의 경험이다. 그것은 사회주의이든, 자본주의이든 마찬가지다. 인간이 원하는 더 큰 자유와 더 풍요한 복지를 체제가 끊임없이 공급하고 증대시킬 수단을 강구하고 도수로를 열지 못하는 한 그 체제의 운명은 결국 파국 뿐이다.
천안문에서 나타난 중국국민들의 욕구는 일단 무력으로 꺾였지만 사람인 이상 요구하지 않을 수 없는 자유와 복지의 요구를 앞으로도 중국국민이 하지 않을리 없는 이상그 요구가 끝내는 중국체제에 반영될수 밖에 없다.
벌써 「홀브룩」 전 미국무성차관보가 말한 것처럼 「피의 승리」는 짧을 수 밖에 없고 희생자들을 위한 기념비가 천안문광장에 셰워질날이 멀지 않았는지 모른다.
이런 예상은 우리의 광주경험에서 보더라도 시간문제라고 해야 할것이다. 다만 그런 결과에까지 이르는 과정에서 국민의 고통과 사회의 정체를 얼마나 지불하느냐 하는 것이 앞으로의 중국의 운명이 될 것이다.
폐쇄적 공산사회의 그것을 개방사회인 우리문제와 단순비교해서는 안되겠지만 따지고 보면 우리의 광주문제도 당시의 그 민주화 욕구를 수용할 체제탄력성을 갖지못한데서 나온 비극이었다. 두 사태에서 보는 초기발표의 그 유사성도 같은 까닭에서다. 대중은 이미 더 진전된 역사에 가 있는데 굳은 체제를 지키자니 허위·왜곡의 발표가 나오고 공식정보가 불신당하다보니 유언비어가 난무할수밖에 없다.
천안문의 비극을 보면서 6공정부나 정치권은 다른 무엇보다도 오늘의 우리체제가 필요한 만큼의 탄력성을 발휘하고 있는지, 아니면 어느 부분이 무뎌지고 굳어져 국민의 짐이 되고있는 것이나 아닌지 새삼 점검하고 그런 자세로 광주도 해결하고 5공도 청산해야 할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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