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인플루엔자 환자 200만 넘어…“설 연휴 여행가도 되나” 문의 빗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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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직장인 정모(43·경기도 안양시)씨는 오는 설 연휴에 부모님과 아내, 초등학생 두 자녀와 함께 일본 여행을 떠날 예정이다. 석 달 전부터 항공편과 숙박을 예약하고 여행 책자를 보며 일정을 꼼꼼하게 챙겼다. 온 가족이 함께하는 해외여행은 처음이라 기대감에 설렜다.

당국 “예년 수준, 한국보다 늦을 뿐” #추락사·환각 유발 변종설도 부인 #“백신 맞았다면 일본행 상관없어”

하지만 설렘도 잠시, 일본에서 최근 인플루엔자(독감)가 대유행하고 이상 행동을 보이는 사람도 늘어나고 있다는 보도를 접한 뒤 불안해졌다. 정씨는 “70대인 부모님과 어린아이들이 혹시나 여행 중에 감염되면 어쩌나 싶어 너무 불안하다. 환불을 받지 못하더라도 여행 일정을 취소해야 할지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일본 내 독감 환자가 200만 명을 넘어서는 등 인플루엔자 바이러스가 확산되면서 국내에서도 불안감을 호소하는 이가 늘고 있다. 질병관리본부 콜센터(1339)에는 설 연휴를 앞두고 “일본 여행을 가지 말아야 하느냐”는 질문이 쇄도하고 있다. 이에 대해 보건당국은 “현재 일본의 상황은 예년 겨울과 비교하면 일반적인 수준으로 심각하지 않다”는 분석을 내놨다. 박옥 질병관리본부 감염병총괄과장은 “일본의 독감 유행 상황이 특별히 위험한 건 아니다. 우리나라 인플루엔자 유행이 일본보다 먼저 시작돼 이미 정점을 지나 하향세에 접어들었다. 일본은 우리보다 유행 시기가 늦어지면서 지금 감염자 수가 최대치로 올라간 것”이라고 밝혔다. 박 과장은 “통상 인구의 5~10%가 계절 독감에 걸리는 것으로 본다. 우리나라의 경우 250만~500만 명까지 독감에 걸릴 수 있다. 일본은 우리나라보다 인구가 많은 만큼 감염자 수도 많아 보이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항간에는 일본에서 유행하는 인플루엔자 바이러스가 특별히 위험한 변종이란 오해도 있다. 일본에서 독감 환자가 창밖으로 뛰어내리려 하는 등의 ‘이상 행동’을 했다는 사례가 전해지면서 생긴 얘기다. 하지만 일본의 인플루엔자 바이러스가 더 위험한 바이러스라는 건 전혀 사실이 아니다. 질병관리본부 박 과장은 “현재 일본에서 유행하는 인플루엔자 바이러스 유전자형은 우리나라에서 유행 중인 바이러스와 같은 A형(H1N1, H3N2)과 일부 B형이 대부분”이라고 설명했다. 이 유전자형은 세계보건기구(WHO)가 올해 유행할 것으로 예상했으며, 백신에 포함돼 있다. 예방접종을 했다면 대부분 예방 가능하고 걸리더라도 가볍게 앓고 지나간다.

독감 환자 일부에서 발생하는 추락사·환각 등 이상 행동의 원인은 아직까지 밝혀지지 않았다. 박 과장은 “세계적으로 인플루엔자에 감염돼 열이 많이 나는 경우 이상 행동을 보이는 환자들이 있다는 보고는 오래전부터 있어 왔다. 실제로 극히 드문 사례”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독감 유행 때문에 일본 여행 계획을 바꿀 필요는 없다고 말한다. 대신 독감 백신 미접종자는 이제라도 접종을 하고, 자주 손을 씻으라고 당부했다. 박 과장은 “설 연휴 일본 여행을 앞두고 있는 여행객들은 여행 중에 손 씻기, 마스크 착용 등 개인 위생에 신경을 쓰면 독감을 예방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 또 독감 예방접종을 하지 않았다면 지금이라도 맞는 게 좋다”고 말했다.

이재갑 한림대 강남성심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백신 접종 2주 뒤에야 완전한 예방효과가 생기지만 맞지 않는 것보다는 맞는 게 훨씬 낫다”고 조언했다.

이에스더 기자 etoil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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