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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풀·최저임금·탈원전…‘면밀한 고려’가 빠졌다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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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0호 17면

빠른 삶, 느린 생각

[일러스트 강일구 ilgook@hanmail.net]

[일러스트 강일구 ilgook@hanmail.net]

적어도 형식과 제도의 측면에서 민주주의가 정착한 때문인지, 많은 사람들 사이에서 요즘과 같이 정치와 정책이 화제가 되는 일도 많지는 않을 것이다. 그리하여 정치 지도자 감이 넘치는 곳이 우리 사회라는 느낌도 생겨난다. 물론 사람들이 내놓는 정치에 대한 의견은 편향되고 일방적인 것일 수 있다. 그러나 때로는 넓은 시야를 살피는 것이거나 정곡을 찌르는 것일 수도 있다.

‘생계 위협’ 택시 기사의 항변 #공유경제 부작용도 고려해야 #작은 고려가 모여 전체가 되듯 #섬세하게 살피는 정치 비전을

얼마 전에 정부가 밀어주는 정책 프로그램으로 카풀이라는 것이 있었다. 개인 소유의 자동차들을 서로 연결하여 공동으로 이용하는 교통수단이 되게 하면 교통비도 절감되고, 사회적으로는 교통량도 줄어들게 될 것이라는 생각이 그 뒤에 들어 있다고 할 수 있다. 교통수단 공유화는 다른 나라들에서 ‘우버’라는 이름으로 시험되고 있는 사업이다. 이것은 즉각적인 이웃 간의 소통을 가능하게 하는 인터넷 통신의 시대에 쉽게 착안할 수 있는 사업이고 기업이라 할 수 있다. 카풀은 이러한 모델을 우리나라에서도 시험해보려고 하는 것인데, 간단히 생각하면, 여러 측면에서 시험해 볼 만한 착안이라 할 수 있다.

최저임금 취지 좋지만 영세업체에 타격

카풀에 대한 택시 업자들의 반대 운동이 벌어질 때, 나는 한 택시 기사로부터 이 문제에 대한 입장 설명을 듣게 되었다. 말할 것도 없이 그는 카풀 제도를 잘못된 것으로 보는 입장을 가지고 있었다. 당장에 그것은 택시 업자들과 운영자들에게 수입의 감소를 의미한다. 그가 인용하는 통계에 의하면 서울에는 7만 대의 택시가 움직이고 있는데, 이것은 일본 도쿄의 5만 대에 비하여도 공급 과잉의 상태에 있다고 할 수 있는 수치이다. 택시를 운영하는 많은 기사들은 얼마 되지 않는 자기 자산을 한껏 투자한 영세업자이다. 새로운 경쟁자가 생겨, 이용자가 줄어드는 것은 곧 생계에 대한 위협이 된다. 이번 정부의 저임금 금지, 근무시간 단축, 비정규직의 정규화 등의 조처는 여러 영세업체, 특히 작은 규모의 식당들을 비롯하여 영세업체에 타격을 가하였다. 그 한 결과는 이들 업체가 영업을 단축한 것이었다. 그 바람에 야간의 택시 이용자들도 줄지 않을 수 없었다. 카풀은 택시업에 새로운 타격을 가하는 일이다.

이러한 사정들을 말하면서도, 그 택시 기사는 정부의 방침에 전체적으로 반대하는 것은 아니었다. 그는 유럽에 가보았지만, 유럽의 많은 도시는 저녁 때는 사람의 움직임이 별로 없는 한적한 상황이었다. 그것은 우리도 따를 수 있는 정상적인 삶의 모습으로 보였다. 그리고 그는 그쪽으로 옮겨 가는 것이 자연스러운 것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그가 최근 정부가 취한 여러 조치를 마땅치 않게 생각하는 것은 분명했다. 그는 어떤 제도가 새로운 단계로 이행하게 될 때에는 그에 따라 일어나는 작용과 부작용을 생각하고 이행의 중간 단계의 문제들에 대한 조치들을 취해야 한다는, 상당히 대국적인 입장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카풀을 비롯하여 최근의 정부 조처들은 이 중간 단계에 대한 고려를 건너뛰고 있는 것으로 보였다.

그가 택시 운전을 해온 것은 수십 년이 되었는데, 처음 택시 운전을 시작하였을 때를 생각하면 지금의 형편은 비할 수 없이 좋아졌다는 것을 인정한다고 하였다. 옛날 운전을 마치고 집으로 갈 때에는, 연탄 가게에 들러 최소 두 개의 연탄을 사들고 돌아가야 했었다. 지금은 그렇게 매일 매일의 난방을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는 점에서, 또 전반적으로 생활이 나아졌다는 점에서, 그의 생활은 옛날과 같지는 아니하였다. 그러나 정부의 최근의 여러 조치로 인하여 그는 생계대책상의 후퇴가 일어나는 것을 걱정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이러한 견해를 밝힌 택시 기사는 위에 소개한 여러 사정을 말하면서, 정부 정책에 대한 불평이라기보다는 비판을 펼쳐 보인 것이다.

위의 택시 기사가 말하는 문제점들은 국가 또는 정부가 살펴야 하는 넓은 배려의 대상들에서 극히 작은 일부에 불과하다고 하겠지만, 그러한 작은 한 부분이라도 문제를 외면할 수 없는 것이 국가이고 정부이다. 최근, 한 외국의 지도자가 그 공약에서 “나라 안에 한 사람이라도 굶는 사람이 있다면, 그 책임은 나에게 있다”고 말하였던 것을 보았다. 그런데 여기에서 생각해보려는 것은 그러한 문제를 넘어서, 정치 행동 방식의 문법과 거기에 일어난 어떤 변화이다. 변화의 하나는 작은 것에 주의할 수밖에 없는 것이 지금의 정치적 상황이라는 사실이다. (물론 이것도 책임있는 자리에 있지 않은 사람이 내놓을 수 있는 허황한 생각에 불과할지는 모르지만.)

그러면서 생각하게 되는 것은 어떤 견해도 오늘의 정치 상황에 참으로 맞아들어 가기가 어렵다는 사실이다. 그것은 내놓는 의견이 넓고 깊지 못한 때문이기도 하지만, 상황 자체가 하나의 전체를 이루고 있지 않기 때문이라고 할 수도 있다. 많은 정치적 견해는 하나의 확실한 관점에서 상황을 판단하는 것인데, 그것은 상황이 하나의 전체를 이룬다는 것-이성적 분석과 이해로 포괄할 수 있는 하나의 전체가 된다는 것-을 전제한다.

삶의 조건이 되는 자연과 물질 환경은 당연히 하나의 전체를 이룬다. 그것이 법칙적으로 분석되고, 하나의 체계를 이룬다는 인상을 줄 때 특히 그렇다. 그것을 보다 나은 것으로 바꿀 수 있는 준비가 되어있을 때, 그러한 환경은 더욱 전체로서 비추게 된다. 이 경우에 두드러지는 것은 정치적 행동의 대상으로서의 사회 전체이다. 사람이 가지고 있는 정치적 의지를 우리와 적, 달리 말하여 아(我)와 비아(非我)의 투쟁에서 생겨나는 것으로 보는 정치 이론이 있다. 그러한 적대 관계는 정치적 일체성를 쉽게 만들어낸다. 그러한 경우가 아니라도 쟁취하여야 할 목표는 일체성의 형성에 도움이 된다. 목표에 대한 확신이 있을 때, 바꾸어야 할 정치 현실은 대적하여야 할 적이 된다.

지난 몇십 년간 우리 사회를 하나의 정치 의지로 묶은 것은 민주화였다. 또 다른 하나의 집단 의지는-정부 당국에 의하여 강조된, 그리고 강요된 집단 의지-는 경제 발전이었다. 이 후자의 정치 목표는 ‘부자가 된다’는 것으로도 표현되지만, 세계화의 압력하에 있는 오늘의 세계에서 선진국의 대열에 끼어들어야 한다는 것은 하나의 집단적 과제가 된다. 민주화와 경제 발전이 일단의 성취에 이른 다음에는 무엇이 국민이라는 사회 집단을 하나의 목표에 동참하게 할 수 있는가? 여건이 어떤 것이든지 간에, 정치 행동가의 입장에서는 국민을 하나의 전체로서 동원할 수 있는 목표를 발견하는 것이 절실하다. 정치적 열의는 대체로 집단적 정열에 의하여 강화된다. 통일은 우리에게 통일 국가로서의 긴 역사로 보나 그간에 강조되어온 정치적 소명의 관점에서 보나, 큰 민족적 과제로 남아 있다. 자본주의적 발전은 분배의 문제, 소득격차, 사회 평등화의 문제를 크게 부상하게 한다. 그것은 불가피한 사회적 과제가 된다. 그리고 그것은 정치에 동원될 수 있는 적대적 감정의 근원이 된다.

한 가지 보태어 생각하게 되는 것은 생활의 문제가 일단의 평형에 이르게 될 때, 사회 전체를 상대로 하는 변화-혁명 또는 혁명적 변화-의 계획은 현실 행동의 동기가 되기 어렵다는 점이다. 그것이 얼마나 큰 것이든지 간에 이미 얻어놓은 이점을 총체적인 변혁에 내어놓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마르크스주의는 역사를 단계적인 것으로 파악하여, 공산주의 혁명은 자본주의적 발전을 거친 다음에 일어나는 것으로 설정하였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그러한 혁명은 자본주의가 발달한 곳이 아니라 자본주의가 충분한 발전에는 이르지 못한 사회에서 일어났었다. 많은 사람에게 그것이 얼마의 큰 것이든 자본주의로 하여, 또는 그 여적(餘滴)이 쌓여, 축적되었던 자기의 자산을 버리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런데다가 자유 민주주의나 자본주의적 발달은 개인주의적 이해관계 속에 전체로서의 사회를 해체하는 경향을 갖는다. 그리하여 그 근본이 어디 있든지 간에, 일정한 단계에 이른 자본주의 사회의 개혁은 혁명이 아니라 개선의 형식을 취할 수밖에 없다. 서두에 언급한 택시기사의 사회 이해에서 지적된바, 이행의 과정에 대한 섬세한 고려는 전체 상황의 변화에 대한 직관적 파악에 관계된다고 할 수 있다. 작은 고려가 모여 전체가 되는 것이다.

슬로건만으론 선진국에 다다를 수 없어

현 정부의 여러 정책들은 그 자체로는 정당하다고 할 수 있을는지 몰라도, 정책 수행의 중간 과정에서 일어나는 여러 문제들에 대한 면밀한 고려가 수반되지 않고 있다는 인상을 준다. ‘소득주도성장’에서 저소득을 높이는 일, 경제성장을 추동하는 일은 다 정당한 목표라 할 수 있지만, 그 사이의 연계가 충돌 없이 쉽게 이루어질 수 있는지는 분명치 않다. 원전 폐기의 결정에 있어서도 그에 이르는 중간단계가 생략되어 있는데, 그렇게 쉽게 그에 따르는 여러 문제-전력 수급, 미세먼지를 포함한 환경 오염 등-를 피해갈 수 있을까?

위에서 인용한 ‘하나의 굶는 사람이 있어도 자신이 책임을 지겠다’는 정치 지도자의 말은 브라질의 룰라 다 시우바 전 대통령의 말이다. 브라질의 전체 상황의 진실을 간단히 가려내어 볼 수는 없는 일이나, 그의 말 그리고 그의 정책이 하나의 기념비적인 의미를 가졌던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 후 한동안 한국과 함께 선진 개발도상국에 포함되었던 브라질이 거기에서 탈락하게 된 것은 또 하나의 중요한 사실이다. 사회 전체를 선진국에 이르게 한다는 것은 하나의 이데올로기적 접근, 슬로건 또는 확신으로 가능한 것이 아니다.

요인을 다 가려 말할 수는 없지만, 한 사회가 정상적인 사회의 위치에 오르는 데에는 끊임없는 작은 고려들이 있어야 하는 것으로 말할 수 있다. 참으로 전체적인 정치 비전은 사회적인 삶 속에 얽혀 있는 전체 조건을 섬세하고 면밀하게 살필 수 있는 넓이와 깊이를 가진 것이라야 한다고 할 수 있다.

김우창 고려대 명예교수
고려대 명예교수. 서울대에서 영문학을 공부한 뒤 미국 하버드대에서 미국문명사 박사학위를 받았다. 1977년 첫 저서 『궁핍한 시대의 시인』 이후 『지상의 척도』 『심미적 이성의 탐구』 『자유와 인간적인 삶』 『기이한 생각의 바다에서』 등을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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