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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 Slim을 입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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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사진=김성룡 기자

한반도를 강타하고 있는 슬림 열풍은 남성이라고 예외가 아니다. 마른 남자가 주목받고 대접받는다. 각종 남성용 다이어트 비법이 속속 쏟아져 나온다. 그동안 패션에 있어서 이성의 몸매를 '감상'하기 힘들었던 여성들은 '성의 평등'차원에서 호응하고 있다. 남성 슬림룩은 '패션 아이콘'인 남성 연예인들에 의해 대중에 어필하기 시작했다. 이들의 이미지를 만든 주인공이 바로 스타일리스트 남주희(28.오른쪽)씨다.

슬림룩의 대명사로 불리는 모델 출신 배우 강동원의 스타일리스트로 잘 알려진 그는 올해로 경력 8년째다. 시각 디자인 전공으로 대학에 들어갔지만 일에 빠져 제적을 당한 경험이 있다.

"사실 강동원씨는 원래 슬림룩 매니어에요. '디올 옴므'가 한국에 진출하기 전인 2년 전부터 일본에 가는 길에 쇼핑을 해 올 정도였거든요."

스타일리스트라고, 또 연예인이 좋아한다고 무턱대고 입힐 수는 없다.

일명 '쫄바지'를 함부로 입다간 "재수 없다"는 소릴 듣기 일쑤이기 때문이란다. 그는 "옷을 보는 안목은 물론이고 연예인들과의 커뮤니케이션 능력이 스타일리스트에겐 중요하다"고 말한다.

"연예인들은 의외로 바깥 세상과 차단되어 있는 경우가 많아요.

주위의 반응은 상관 않고 본인이 선호하는 브랜드의 옷을 입으려고 하는 식이죠. 그걸 설득할 수 있어야 해요."

그렇다면 슬림룩은 어떻게 탄생한 것일까?

그의 설명을 빌려 간단히 말하자면 세계적 추세가 연예인들의 체형과 맞아떨어진 결과다.

"주로 외국 패션 잡지 등을 보면서 영감을 얻는 편인데 당시 슬림한 스타일이 떠오르고 있었죠.

제가 스타일링하는 연예인들이 대부분 마르고 팔이 긴 서구형 체형이라 어울릴 거라고 생각한 거죠."

(左) 이민기, 정의철(위부터) (右)한은정, 이동욱(위부터) 남주희씨가 스타일링을 맡은 연예인.
[TNGT, 연합, KBS, 연합 제공]

그는 이동욱과 이민기를 예로 들었다.

둘 다 마른 체형에 팔다리가 서양인보다 길 정도여서 일반적인 의상을 입힐 경우 아버지 옷을 입고 나온 것 같은 느낌을 줄 수 있다고 설명했다. 몸매를 드러내는 슬림한 옷이 더 자연스럽게 보인다는 말이다.

그가 현재 '거느리고'있는 연예인만 강동원.김주혁.이민기.이천희.재희.이동욱.SG워너비.정의철.최여진.서지혜 등 얼추 10여 명에 달한다. 우연히도 대부분 남성 연예인들이다.

그래서일까?

그가 스타일리스트로서 가장 기억에 남았던 일은 2년 전 방영됐던 드라마 '풀하우스'에서 탤런트 한은정을 스타일링했을 때라고 한다.

당시 한은정은 과감한 란제리룩을 선보여 화제가 됐다.

"한은정씨는 외모와 달리 보수적인 성격이에요.

노출이 많은 의상을 즐기지 않죠. 그렇지만 주인공인 송혜교씨에 묻히지 않으려면 완벽한 보디라인을 드러내는 길밖에는 없다고 설득했죠."

그래서 그가 만들어낸 스타일은 레이스가 화려한 브래지어에 짧은 상의를 입혀 가슴에서 허리 라인을 강조하는 것이었다.

"무엇보다 여성들의 반응이 아주 좋았어요."

이미지로 승부를 거는 스타일리스트에게 역시나 가장 큰 보람은 주변의 호평이란 말이다.

이미지 메이킹의 측면에서 보자면 SG워너비는 보석 같은 존재다.

"SG워너비를 처음 본 건 1집을 내고 활동하던 어느 대학 축제 때였어요.

그동안 워낙 길이가 긴 연예인들만 상대해 와서 그런지 처음엔 어색했죠. 그렇지만 노래를 듣고는 저도 팬이 되어버렸죠."

SG워너비는 정장 스타일의 고급스러움으로 승부를 걸었다.

"첫 콘서트를 준비하면서 전날 저녁 8시에 동대문.남대문.압구정동 등에서 일을 시작해 이튿날 아침 7시에 마친 적이 있어요. '이러다 정말 내가 죽겠구나'라는 생각을 할 정도였죠. 그렇지만 이젠 말끔한 정장을 완벽하게 소화하는 걸 보면 기분이 너무 좋아요."

그러고 보면 애절한 노래를 부르는 그들에게 화려한 의상은 어울리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 만큼 블랙 위주의 정장은 어느새 그들의 트레이드 마크가 되어 버린 느낌이다.

스타일리스트에게 가장 큰 상처는 자신이 스타일링한 스타가 시상식 등에서 워스트 드레서로 꼽히는 경우라고 한다.

"세상 어느 스타일리스트가 생각 없이 옷을 입히겠어요.

그렇지만 인터넷이나 잡지의 평가에 우리의 운명이 달려 있어요."

특히나 인터넷이 발달한 한국에선 스타의 옷차림에 대한 평가가 실시간으로 이루어진다. 이런 경향을 반영하듯 시상식 시즌이 끝나고 나면 스타일리스트들의 대이동이 시작되는 경우가 허다하다고 털어놓는다.

오는 7월 21일 서울 삼성동 코엑스에서 열리는 대종상 영화제,

수많은 스타들이 화려한 의상을 입고 레드 카펫을 밟을 것이다.

그리고 그들의 의상은 다시'평가'를 받을 것이다.

순식간에 평가가 갈리는 스타일리스트는

외환시장의 딜러와 같은 존재가 아닐까?

글=조도연 기자 <lumiere@joongang.co.kr>
사진=김성룡 기자 <xdrag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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