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백억대 피카소 … 큰손들 "사자" 열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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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산을 잘 못하겠어요. 0을 꼭 하나씩 빼게 되네요. 20억 원인가 싶으면 200억 원이니 미술품에 몰리는 손이 크긴 크네요."

16일 오후 '바젤 아트 페어(Basel Art Fair)'에서 만난 전시기획자 김순주씨는 "전 세계 부자들이 좋아할 작품만 나왔다"며 입을 다물지 못했다. 37회를 맞은 올 '바젤 아트 페어'는 14~18일 닷새 동안 6만여명 손님이 몰려들며 세계 최대의 미술 시장임을 다시 한 번 입증했다. 최근 가열되고 있는 미술품 거래 열기가 뚜렷하게 느껴지는 현장이었다. 전 세계에서 날아온 300여 개 화랑이 2000여 명 작가의 작품을 통크게 팔아치웠다. 값은 크게 올랐고 손님은 흥청댔다. 미술품은 이제 가장 확실한 투자 품목으로 물신(物神)이 되는 중이다.

파블로 피카소 코너를 만든 크루기에 갤러리와 전시장 앞에 설치된 미국 작가 마크 디 수베로의 대형 조각 ‘우라루’(左).


올 바젤의 최대 인기 품목은 파블로 피카소, 앙리 마티스 등 20세기 미술사의 거장들이었다. 이들 '모던 클래식'에 쏠린 화상(畵商)의 관심은 '아트 페어 데일리 뉴스'의 표현대로 "큼직한 먹이를 찾아 킁킁대는 개"를 연상케 했다. 수십 년 피카소의 작품을 다뤄온 하이너 하크마이스터(독일 뮌스터 하크마이스터 화랑 대표) 는 "올 바젤은 거의 피카소 개인전 같다"고 표현했다. 작품은 보통 100억 원대를 넘어섰다. 확실하게 돈이 되는 비싼 작품에 쏟아지는 수집가와 화상의 눈길이 전시장 안을 후끈 달궜다.

인기 작가에 대한 선호와 함께 또 하나 주요 흐름은 드로잉의 재발견이다. 회화나 조각에 비해 평가를 받지 못했던 드로잉이 독립 장르로 당당하게 홀로서기에 성공했다. 마티스의 드로잉은 수십억 원을 호가했다. 앤디 워홀, 파울 클레, 윌렘 드 쿠닝 등 중요 작가의 드로잉이 화랑 부스마다 그림과 나란히 걸렸다. 니나 짐머(바젤 시립미술관 학예연구원)는 "현대 미술에서 드로잉의 개념이 확장되면서 그만큼 미술시장에서 주목도가 높아졌다"고 설명했다.

한껏 올라갔던 사진에 대한 관심은 좀 주춤한 양상을 보였다. 지난 몇 년 새 독일 쾰른 아트 페어나 스페인의 '아르코'에서 인기 있었던 중국 미술은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 한국에서 참가한 갤러리 현대가 취급한 정도였다. 요즈음 한국 화랑들이 경쟁적으로 열고 있는 중국 미술전시를 한번쯤 돌아봐야 할 시점임을 말해주는 듯했다. '중국 미술이 된다'는 유행에 누구나 뛰어들어 한국 화랑끼리 중국 작가 작품 값을 올려놓은 최근 사태는 세계 미술 시장 흐름에 비춰보면 되새겨봐야 할 점이 많다.

또 하나 올 바젤의 최대 이슈는 화랑 간의 협력 관계 구축이다. 특히 뉴욕 화랑들이 베를린에 분점을 내거나 기존 화랑과 제휴를 맺어 미국과 유럽 미술시장을 연결하는 긴밀한 다리를 놓고 있다. 21세기 세계 미술계의 방향이 뉴욕과 베를린의 발빠른 움직임을 좇고 있다.

바젤(스위스)=정재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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