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국수습의 초당적 자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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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그동안 할 일을 못하고 방황하던 정치권이 모처럼 대화를 다시 시작하고 당면 현안들을 다루어보자고 나선 것은 늦었지만 다행스런 일이다.
오늘날 우리사회는 이념·통일문제를 위시하여 노사·학원·통상문제 등이 어지럽게 얽혀 심각한 국논의 분열과 갈등 속에 방향을 잃고 표류하는 듯한 상황이다.
이런 문제들을 다루고 해결책을 내야 합 정치권이 이를 외면하고 동해 선거에서 타락·매수나 저지르고 있는 바람에 공권력과 재야의 충돌, 폭력 등에 의한 사회불안의 심화, 경제의 침체 등 사태는 날로 악화되어 왔다.
이제 정치권이 다시 3야당 총재회담·4당 영수회담·5월 임시국회 등으로 정치를 복원하겠다고 나선이상 우리 사회상황을 직시하여 이런 문제들이 정치권에 요구하는 해결책을 도출해 내지 않으면 안 된다.
우선 무엇보다도 원내 4당은 오늘의 혼란을 수습하는 최소한의 기준이 될 큰 테두리의 원칙에 합의하는 자세를 보여야 할 것이다. 오늘날 심각한 국논 분열과 갈등의 원천이 되고 있는 통일·이념문제에 관해4당은 최소한 자유민주체제의 수호를 공동 선언하고 통일논의는 자유롭게 하되 통일정책의 추진은 정부가 주체임을 확인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어떤 경우든 폭력은 반대한다는 반 폭력 입장을 명확한 어조로 공동선언해야 할 것이다.
다음으로 이런 기본적인 전제의 합의아래 당면문제들에 대한 초당적인 대처노력이 나와야 하리라 본다. 통일문제든, 노사문제든 어느 것 하나 여야 차원의 문제가 아니다. 구체적인 해결책의 내용에 관해서는 정당간에 이견이 있는 것이 당연하지만 정치권 내부에서 격렬한 토론을 거치더라도 단일 해결책을 합의할 수 있어야 하고 합의된 결론의 유효한 집행을 위해서는 4당이 힘을 모아야 할 것이다.
이런 노력은 구체적으로 악법개폐, 노사에 대한 설득 등에서 우선적으로 나타나야 하고 대외 통상문제 등에서도 효과적인 4당 공조 노력을 보여야 할 것이다. 이런 과정에서 다시 당리당략이 전면에 나와 호재니까 밀어붙이고 악재니까 회피하자는 식의 고질이 재연돼서는 곤란하다.
가령 5공 청산문제도 이번에 다뤄야 하고 이번에는 꼭 매듭을 지어야겠지만 정국이 다시 5공 정국이 돼서는 안될 것이다. 어디까지나 현안을 다루고 앞일을 걱정하는「현안정국」이 돼야지 다시 5공 청산문제로 입씨름이나 되풀이하고 하는 일없이 방황하는 정국으로 되돌아가서는 안 된다.
셋째, 현안을 다루는데 있어 정치권은 속도감을 느낄 수 있게 해주는게 중요하다. 당면문제들은 모두 하루 이틀의 문제가 아니고 관련자들의 고통은 물론 일반 국민들의 걱정도 이미 이만저만이 아니다. 각종 문제들이 모두 숨가쁘게 해결책을 요구하고 있고 전반적인 사회분위기의 안정국면으로의 빠른 전환을 국민은 기대하고 있다.
정치권은 이런 국민 여망에 맞추어 문제를 질질 끌지 말고 속도감 있게 시원시원하게 논의·처리하는 모습을 보여주기 바란다. 영수회담도 빨리 하고, 임시국회도 할 수 있는 한 빨리 여는 것이 좋겠다. 정치권의 행보가 이미 늦은 만큼 이제부터라도 서둘러야 한다.
중간평가 연기와 동해선거 등을 겪으면서 정치권은 비판도 받고 시련도 겪었는데 이제부터 전과는 다른 새 모습의 정치를 보여주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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