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고용 성공 못했다” 인정한 정부, 정책 방향 신속히 바꿔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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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문재인 대통령은 그제 국무회의에서 “고용과 민생 지표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말했다. 고용노동부를 찾아서는 “고용 문제에 있어 지금까지 성공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 엄중한 평가라고 생각한다”고 토로했다. 문 대통령이 이렇게 부정적 평가를 한 건 고용 위기가 나타나고 9개월 만이다. 사실 일자리 위기의 신호는 진작 나왔다. 올 2월 취업자 수는 1년 전보다 10만4000명 늘어나는 데 그쳤다. 지난해 월평균 30만 명가량 증가했던 데 비해 3분의 1토막이 났다. ‘소득주도 성장’을 외치며 최저임금을 16.4%나 올린 영향이 뚜렷했다. 도소매와 숙박·음식업 등의 분야에서만 일자리 14만5000개가 사라졌다. 하지만 정부는 일시적 현상으로 치부했다.

소득주도 성장의 부작용 여전 #최저임금 인상속도 조절하고 #탄력근로는 확대 적용이 시급

그 뒤 5개월간 일자리 증가가 10만 개 안팎에 그치는 고용 위기가 이어졌다. 소득주도 성장의 부작용으로 취약층이 일자리를 잃고 분배는 악화했다. 그래도 정부는 엉뚱한 통계를 들이대며 “최저임금 인상의 긍정 효과가 90%”라고 주장했다. 7, 8월 들어 일자리 증가가 5000개, 3000개로 곤두박질쳐도 청와대는 “경제 체질이 바뀌면서 수반되는 통증”이라고만 했다. 그러다 드디어 인식이 바뀌게 된 것이다.

고용 위기는 어제 통계청을 통해 재확인됐다. 11월 취업자 수가 1년 전보다 16만4000명 늘어나는 데 그쳤다. 언뜻 상황이 나아진 듯하지만, 속내는 다르다. 공공행정과 사회복지서비스업 분야에서만 일자리 19만6000개가 늘었다. 대부분 정부가 세금으로 만든 단기 일자리다. 대학에 “강의실 불 끄기 아르바이트를 채용하라”고까지 해서 만들었다. 공공기관 인턴들이 과일 깎기와 복사만 한다는 보도도 있다. 11월 고용 성적은 이런 일자리가 빚어낸 착시다. 반면에 소득주도 성장의 부작용은 여전하다. 도소매와 음식·숙박 등에서 일자리 21만9000개가 날아갔고, 제조업에서도 취업자가 9만1000명 줄었다.

뒤늦은 감이 있지만, 문 대통령이 고용 위기를 받아들인 것은 반길 만하다. 정확한 현실 인식이야말로 제대로 된 정책을 세우는 첫 단추다. 이제 바뀐 판단에 맞춰 정책 발걸음도 신속히 방향을 바꿔야 한다. 무엇보다 시급한 건 최저임금 인상 속도를 조절하고 주 52시간 근로제를 탄력적으로 적용하는 일이다. 중소기업들엔 내년에 다시 10.9% 오르는 최저임금은 발등의 불이다. 정부가 추진하는 최저임금 계산 방식 변화까지 고려하면 내년 실질 인상률은 20%를 넘는다는 게 한국경영자총협회의 계산이다. 그러잖아도 견디다 못한 중소기업들이 문을 닫거나 해외로 빠져나가는 판국이다. 최저임금 쓰나미를 또 한번 맞으면 상황은 예측불가다.

더불어 무조건 친노조에서 벗어나 노동시장을 유연하게 하고, 지긋지긋한 악성 규제를 풀어 기업 투자를 끌어내야 한다. 지금 필요한 것은 세금으로 월급 주는 단기 아르바이트가 아니라 기업이 투자하는 ‘지속 가능한 일자리’다. 대통령도 “일자리는 기업이 만든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