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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 뺨때리기」의 반성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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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요즈음 대학사태를 보면서 한 친구가 들려준 어느 고등학교 교사의 얘기를 떠올리게 된다.
그 교사는 수업시간에 옆자리 친구와 장난을 치는 학생이 있으면 두 학생을 함께 자리에서 일어서게 한 다음 서로 상대방 친구의 뺨을 때리도록 하는 독특한 체벌을 내렸다는 것이다.
선생님의 강요에 못 이겨 본의 아니게 친구의 뺨을 때려야 하는 학생의 손길이 세차지 못할 것은 빤한 이치다. 되받아 때리는 상대방 친구의 손길도 역시 부드러울 수밖에 없다. 교사는 『더 세게!』를 연발하다가 결국 학생에게 다가가서 한 쪽 학생의 뺨을 호되게 갈기며『이렇게 때리란 말이야!』 호령한다.
그렇게 되면 얻어맞은 학생은 분통이 터지고 독이 올라 얻어맞은 만큼 세게 짝궁 친구를 때리고 상대방은 이에 질세라 더욱 힘껏 내려쳐 몇 차례 따귀 때리기가 오고가다보면 종내는 주먹이 동원되는 격투로 내닫게 되고 만다.
물론 그러한 사태 직전에 교사의 『그만!』 이라는 외침이 터져 나오지만 수습은 교사의 면전에서 뿐이고 휴식시간 또는 방과후 변소 뒤 같은 으슥한 구석에서 으레 속전이 벌어지는 것이었다.
그 후 그들은 수업분위기를 산만케 하는 장난을 다시는 하지 않게 됐지만 둘 사이의 우정은 산산이 파괴돼 버리고 적대감과 증오심만 날을 세우게 됐다. 따귀를 때리게 한 명령자의 존재와 싸우게된 동기는 까맣게 잊은 채….
과거 독재정권들이 우리대학을 다루었던 방법과 행태가 바로 이런 식이었다. 대학생들의 독재와 불의에 대한 저항과, 민주와 자유에 대한 요구를 탄압하면서 그 전면에는 대학당국과 교수들을 내세웠던 것이다.
학생들의 동태를 살피게 하고 학생들의 사고와 행동이 체제에 순응하도록 설득토록 했으며 시위가 벌어지면 이를 몸으로 막아내는 일도 교수들과 대학당국에 맡겼다. 심지어 한때는 교수들에게 학생들을 회유하고 무마시키기 위해 향응을 베풀도록 「뒷돈」까지 대주기도 했다.
총장·학장·교수의 임면은 학식과 인격보다는 「시국관」과 대정부 협조자세가 그 평가기준이었다.
비협조적인 교수들은 「재임용」제도를 악용하여 가차없이 추방했다.,
이른바 「대학의 자율」이란 것은 명령자는 얼굴을 감추고 교수와 학생이 정면에서 맞붙게 하는 리모콘전술을 구사했던 것이다. 명단은 그들이 작성하면서도 학생처벌에는 대학의 이름을 내세웠다. 이런 상황에서 학생들은 교수들을 「어용」「기회주의」「무능」으로 매도하고 나섰다. 피해자들끼리 쓰라린 상처에 소금을 뿌리는 격이었다.
이 와중에서 스승과 제자의 관계는 끈끈히 교류됐던 존경과 사랑, 신뢰와 흠모의 정이 깡그리 메말라 버리고 불신과 증오가 들끓는 적대 관계로 전락하고 만 것이다.
학생들이 총장과 교수의 방을 점거하는가 하면 기물을 파괴하는 사례가 비일비재하다. 더욱 불신은 깊어져 급기야는 총장도 우리가 뽑겠다, 등록금을 내리라는 요구를 내걸고 교수들과 몸싸움도 하고 등록금을 학생들이 직접 거두는 사태에 이르고 말았다.
집단으로 수업을 거부하는가 하면 교수는 이에 맞서 폐강을 선언하고 나선다. 대학존립 자체가 위기에 봉착했다는 개탄과 우려도 들린다.
이러한 현실은 모두가 독재정권의 비교육적이고 부도덕하기 짝이 없는 「서로 뺨때리기」식 대학정책의 산물이요 후유증이 아니고 무엇인가.
오랫동안 타율에 의해 왜곡되고 오도돼온 대학은 이제 불신과 적대감을 쓸어내 버리고 대학본연의 모습으로 되돌아가도록 교수와 학생이 온힘을 기울여야 할 시점이다.
사제간에 존경과 위엄, 사랑과 신뢰를 회복해야 한다. 대학에서 이처럼 자기 소모적이고 자기 파괴적인 양상이 계속된다면 이 나라의 미래는 암담할 뿐이다.
이제 겨우 민주와 자유의 싹이 돋아나고 있지 않은가. 아직까지는 완벽하거나 흡족한 정도에는 미치지 못했을지라도 그럴수록 더욱 미숙한 싹을 보호하고 키워나가야 하지 않겠는가. 엄격하고 자발적인 자기절제와 질서의식이 결여된 민주·자유란 방종과 무질서에 지나지 않다.
교수는 스승이고 총장은 대학의 대표인 동시에 스승의 대표이므로 그 선출도 스승이 책임질 일이다. 교수 중에 스승으로 따르기에 흠이 있는 사람이 있으면 그의 제자 되기를 거부하는 것이 학생으로서 취할 수 있는 가장 강한 저항이 될 것이다. 그 결정은 집단적인 선동이나 배척에 의해서가 아니라 학생개개인의 이성적인 평가와 판단에 의해야 할 것이다.
등록금 문제도 그렇다. 분납정도의 요구는 별 문제가 없겠으나 뚜렷한 근거 없는 납부거부는 온당치 못하다.
재단운영에 의혹이 있으면 그 내용의 공개를 요구할 권리는 등록금 납부자인 학생에게도 있다는 생각이다. 정부가 납세자인 국민에게 예산·결산내용을 밝히는 이치와 같다. 그래서 잘못된 점이 있을 경우 이를 시정토록 요구하는 것이 합당한 수순이다.
이 나라에 민주와 자유의 싹을 트도록 기여한 학생들의 공적을 찬양하는데 반대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우리는 이 싹을 상하지 않고 무성하게 하여 열매맺도록 모든 행동을 삼가고 정성을 다해 가꿔가야만 한다. 「뺨 때리기」의 가해자들이 다시는 그 무모하고 부도덕한 명령을 하지 못하도록 어떤 구실도 주어서는 안 된다.

<편집국장 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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