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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혁재사진전문기자의네모세상] 태백 검룡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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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면

과연 민족의 젖줄 한강이 예서 비롯된 것인가. 하루 2000t 가량의 지하수가 석회암반을 뚫고 올라와 514.4㎞ 한강의 발원지(국립지리원 공인)가 된다는 안내판의 문구는 그럴 듯하지만 샘은 고작 서너 평 남짓이다. 금대봉 기슭의 옹달샘들이 땅속으로 스며들었다가 예서 모여 솟아난다지만 미동조차 없는 듯 고요하다. 하긴 무릇 사물의 기원을 일컬어 남상(濫觴)이라 하지 않는가. 일찍이 공자가 '양쯔강도 그것이 시작될 때의 물은 겨우 술잔을 띄울 만하였다' 한 데서 비롯된 그 뜻을 검룡소를 보고서야 알 듯하다.

하지만 고요한 샘과 달리 물은 샘 턱에서 갑자기 살아 꿈틀대듯 시원스레 내달린다. 한 바퀴 휘돌았다가 폭포처럼 내려치더니, 튀어 오르며 굽이쳐 흐르는 본새가 마치 용틀임 같다. 이렇게 계곡으로 흘러든 물은 내를 이루고 강으로 흘러들 것이다. 그 강은 정선.평창.단양.양평, 그리고 서울을 거쳐 서해로 흘러갈 것이다. 바로 이 작은 옹달샘이 한반도를 가로질러 흐르는 1300여리 대장정의 시원(始原)인 게다. 때마침 청정수에만 사는 꼬리치레도롱뇽 한 놈이 세찬 물을 거슬러 오르며 자맥질을 한다. 검룡소는 사람만이 아니라 뭇 삶들의 생명수인 게다.

비 오는 날을 택해 검룡소로 향했다. 평상시엔 건조한 바위가 흰색을 띨 것이고, 물거품으로 떨어지는 물빛도 흰색이라 대비가 약해 생동감 없는 사진이 되기 십상이다. 비 맞아 적당히 물기 어린 바위는 상대적으로 어둡게 보여 흰 물빛을 돋보이게 하며, 촉촉하게 물먹은 이끼는 싱싱한 푸름을 더해 준다. 이렇듯 항상 일기 예보에 귀를 기울이면서 자연을 슬기롭게 이용하면 남다른 결과를 얻게 된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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