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글로벌 아이

신초45 휴간, 남일 같지 않은 이유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8면

윤설영 기자 중앙일보 도쿄 특파원
윤설영 도쿄 특파원

윤설영 도쿄 특파원

일본의 잡지 시장은 고유의 언론 영역을 형성하고 있다. 매주, 매월 쏟아지는 시사잡지들은 읽는 즐거움, 서점을 찾아가는 즐거움을 준다. 일간지가 흉내 내지 못하는 깊이 있는 취재, 금기를 깨는 발상, 참신한 기획기사들이 독자들의 사랑을 받아 왔다.

그러나 지난 25일 월간지 시장 1, 2위를 다투던 ‘신초45’가 ‘폐간에 가까운 휴간’을 하게 된 것은 한순간의 패착 때문이었다. 발단이 된 건 스기타 미오 자민당 의원의 이른바 ‘생산성’ 발언이었다. ‘신초45’ 8월호에 “LGBT(동성애자 등 성적 소수자)는 아이를 낳지 않는다. 즉 생산성이 없다. 여기에 세금을 투입하는 것이 옳은 것일까”라는 내용의 논문이 실렸다.

국민의 녹을 받아먹는 국회의원이 사회적 약자에 대한 ‘헤이트(특정 집단에 대한 공개적 차별·혐오) 발언’을 했다는 데 시민들은 분노했다. 자녀를 출산했는지 여부로 인간의 ‘생산성’을 따지는 저열함은 말할 것도 없다.

잊히는 듯했던 사건이 급반전된 건 신초45의 그 후 대응 때문이었다. 지난 15일 발간된 신초45 10월호엔 ‘생산성’ 발언을 옹호하는 특집기사가 실렸다. 필자들은 ‘새로운 역사교과서를 만드는 모임’ 부회장 등 극우 인사들로 채워졌는데, 한마디로 ‘생산성 발언이 뭐가 잘못됐냐’는 주장이었다. LGBT가 치한이나 성범죄자와 다를 게 없다는 폭언도 버젓이 실렸다.

결론부터 말하면 신초45는 10월호 이후 뜨거운 비난 여론 끝에 발간 열흘 만에 휴간을 결정했다. 신초사 앞에선 항의집회가 열렸고 ‘신초 출간물 불매운동’으로까지 번지자 결국 백기를 든 것이다. 양식 있는 시민들의 승리였다.

신초45의 비상식적 대응을 두고선 일본 출판 시장의 불황을 배경으로 지적하는 목소리가 높다. 1982년 창간한 신초45는 2002년 월간 판매 부수가 최대 5만7000부에 달했지만 최근엔 출판 불황으로 1만 부를 겨우 넘는다고 한다. 판매 부수를 늘리기 위해 자극적인 노선으로 갈아타다 보니 무리수를 뒀다는 얘기다.

문제는 이런 흐름이 출판 시장 전반에 공기처럼 흐르고 있다는 점이다. 실제 서점에 가 보면 과격한 제목의 서적들이 판매대의 잘 보이는 곳에 진열돼 있다. 여기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것이 중국·한국에 대한 비난·혐오를 부추기는 내용들이다.

신초45는 잠깐 판매가 늘었을지는 몰라도 결과적으로 독자를 잃게 됐다. 122년 전통의 신초사 명성이 무너진 건 순식간이었다. 신초사 창업자는 “양심에 어긋나는 출판은 죽어도 마땅하다”는 말을 남겼다. 양심을 잊은 언론은 설 자리가 없다는 말, 신초사에만 해당되는 말은 아닌 것 같다.

윤설영 도쿄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