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팀, 이라크 위해서라도 잘싸워달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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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라크인들을 위해서라도 한국이 월드컵에서 선전해주길 바랍니다."

아랍에미리트(UAE) 두바이에서 만난 이라크 축구 대표팀 주장이자 공격수인 라자크 파르한(29)은 15일 말했다. LG전자가 이라크축구협회와 축구국가대표팀 후원을 연장한다는 사실을 발표하는 자리에서다. 이렇게 말하면서 파르한은 이라크 국기를 LG전자 김기완 아.중동 본부장에게 전달했다.

파르한은 왼쪽 가슴에는 이라크 국기를, 오른쪽 가슴에는 LG마크가 달린 유니폼을 입고 연신 즐거워했다. 이번 행사에 초청된 이라크 축구계 인사들과도 만날 수 있어서 더욱 기뻤다고 한다. 그는 가족도 없이 홀로 5년 이상을 해외에서 활동하는 동안 이라크를 자주 방문할 수 없었다. "이처럼 큰 행사가 있을 때에나 동료들을 만날 수밖에 없는 현실이 안타깝다"고 그는 말했다. 결혼도 해야 하니 귀국하라고 부모들은 채근하지만 그는 어렵게 들어간 석유 부국 UAE의 프로축구팀인 '두바이'를 버리기가 쉽지 않다. 고향인 바그다드 남부 바빌주는 아직도 연일 폭탄테러가 발생하는 곳이어서 편한 마음으로 축구를 하기도 어렵다.

"저도 길거리에서 친구들과 공을 차며 축구를 배웠지요. 하지만 현재 어린이들은 저처럼 할 수 없다는 게 너무 안타깝습니다."

파르한은 현재 이라크 상황이 아이들의 꿈마저 앗아가고 있다고 걱정했다. 농촌 지역인 바빌에서 태어나 축구를 배우고 그 곳에 있는 초.중.고등학교를 나오는 동안 생활은 어려웠지만 불안함을 느껴보지는 않았다고 그는 전했다. 이런 이유에서 그는 바쁜 일정에도 LG전자 이라크 대표팀 후원계약 체결식에 참석했다. 축구는 이라크 어린이들과 청소년들의 꿈이자 유일한 낙이기 때문이란다. "멀리 동양의 한 기업이 이라크 축구를 위해 이처럼 지원을 아끼지 않는 데 대해 깊이 감사한다"고 그는 말했다.

파르한은 이어 "아무리 상황이 어려워도 이라크인들은 한국 경기를 TV를 통해 지켜볼 것"이라며 "한국이 아시아를 대표해 독일에서 선전해주길 기원한다"고 밝혔다. "이라크 축구를 지원하고 있는 아시아권의 팀이 서양인들과 겨뤄 승리를 거둔다면 그것이 바로 이라크의 승리가 될 것"이라고 그는 강조했다.

그는 한국이 "8강 정도의 성적을 거둘 것"이라고 예상했다. "유럽팀들은 유럽에서 펼쳐지는 경기에 워낙 강하다"고 그는 나름대로 전문가적 해설도 곁들였다. 그는 또 "전력이 들쭉날쭉하는 토고와 첫 경기에서 강하게 밀어붙여 승리를 거둔다면 사기가 올라가 더 좋은 성적을 거둘 수도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2004년 이라크 대표팀을 이끌고 상암 월드컵경기장에서 한국 대표팀과 친선경기를 치른 파르한은 "2002년처럼 한번 흐름을 타면 한국팀도 무서운 팀"이라고 말했다.

이번 후원 연장 계약 체결로 이라크 대표팀과 올림픽팀은 친선경기 때마다 LG 로고가 새겨진 유니폼을 입고 뛰게 된다. 이라크 축구협회가 발행하는 자료나 웹사이트에도 한국 업체의 로고가 사용된다. 김 본부장은 "스포츠 마케팅이라는 측면도 있지만 이윤을 이라크 사회에 환원하고 이라크인들에게 한국인들의 평화 의지를 알리기 위해 지원 연장을 결정했다"고 밝혔다.

두바이=서정민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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