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을 만드는 작은 정성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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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나는 3형제를 낳아 기르며 행복하게 살았으나 지난 80년 국민학교 2학년이었던 막내가 학교 철봉에서 떨어져 뇌수술을 받은 후 얼마 살지 못하고 내 곁을 영영 떠나버린 후 씻을 수 없는 슬픔을 안고 살아가는 불행한 엄마가 되었다.
그런데 최근 내가 다니는 YMCA체육클럽에서 나 같은 불행을 겪고 불우한 이웃을 위해 헌신하며 살아가는 친구를 만났다. 그에게서 약2주전에 한 가엾은 신문배달 어린이의 교통사고 소식을 들었다.
국민학교 4학년생인 11세의 강세열 소년은 연탄배달부인 아버지 밑에서 엄마도 없이 형제가 어렵게 살고 있다고 한다. 따라서 1천만원이나 든다는 수술비를 마련할 수 없다는 딱한 사정이었다.
나는 그 소년의 수술비를 마련하기 위해 조그마한 모금운동을 벌이고 있다.
영세를 받은 지 1년이 채 안된 신자지만 신부님의 허락을 얻어 내가 다니는 양재동성당에 뜻을 전하고 지난 15일부터 모금을 시작했다.
신부님의 마지막 기도가 끝나기도 전에 혹시 모금함을 못보고 그냥 가시는 분이라도 있을까 하는 얕은 생각에 부지런히 모금함을 들고 문 쪽으로 가는데 할머니 한 분이 5만원을 내게 쥐어주시는 것이었다.
나는 좁았던 생각을 부끄러워하면서 성함이라도 알려달라고 말씀드렸지만 가진 돈이 그것뿐이라며 그분은 눈물어린 내 앞을 서둘러 지나가는 것이었다.
그날 돈을 갖고 있지 못한 분들이 빌어서까지 모두 도와주신 일을 생각하면서 잠을 못 이루는 내게 남편은 그 할머니의 큰 뜻을 헤아리고 그냥 자라고 위로하는 것이었다. 남편은 이튿날 퇴근 때 인삼 한 상자를 사 가지고 왔다. 그 할머니께 드리라고….
요즘 갑자기 눈물박사가 되어버린 나는 뛸 듯이 성당으로 가서 신부님께 그 할머니를 찾아 인삼을 전해달라고 부탁드리고 왔다.
16일 밤엔 내가 다니는 서초동 성서대학에서도 모금운동을 벌였는데, 한결같은 마음으로 도와주시고 경제사정이 빠듯해 보이는 성서대학 당국에서도 금일봉을 모금함에 넣어주셔서 나를 눈물짓게 했다.
내가 사는 이곳 동신아파트 주민들에게도 뜻을 전했더니 앞다투어 도와 주셔서나는 오랫동안의 불행한 엄마에서 벗어나 따뜻하고 아름다운 마음들에 둘러싸여 행복을 느낀다.
모금함을 만들어주신 가난한 목수아저씨, 인쇄를 맡아준 친구 남편, 자동차를 태워준 고마운 친구들, 조금씩 돈을 모아 모금함의 열쇠를 사준 미장원의 두 아가씨, 소식을 들은 모든 분들이 한푼두푼씩 나를 보기만 하면 돈을 주신다.
이제 YMCA에 가서 우리 회원들에게 이 소식을 전하면 자기일 같이 열심히 도와줄 것이다. 나의 작은 뜻보다 더 크고 깊고 넓게 이 일을 이해하고 도와주고 이끌어주시는 모든 분들 앞에 나는 한없이 부끄럽고 고맙고 죄송할 따름이다. <서울 서초구 도곡동 동신아파트 바동 80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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