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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열풍과 사회기강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세상이 온통 정치판 중심으로 돌아가는 요즘 사회의 이목이 전두환씨 후속조치, 5공 비리와 광주 청문회 등에 집중되고 있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그런 현상은 오랜 정치부재의 강요된 환경을 벗어난 국민들이 오늘의 정치현실을 올바로 인식하고 참여의식을 높여주는데도 크게 기여하는 점 또한 소중히 여겨야 한다.
그러나 그런 현상이 도를 넘고 장기화 돼 사회 전체의 기강이 해이해지게 한다면 그것은 경계해야할 일이다.
민주화로의 정치변혁은 국민들의 마음속에 기대감을 크게 높여 주게 마련이다. 과거 독재시대에 누리지 못했던 자유를 만끽하고 싶어할 뿐 아니라 시간이 지나면 민주화가 민생문제에도 새로운 향상을 가져오기를 기대하게 되는 것이다.
그런 고양된 기대가 해이해진 사회기강 때문에 충족되지 못하고 오히려 퇴보할 때 환멸이 오고 그런 환멸이 사회에 널리 퍼질 때 복고주의의 위험한 분위기조차 머리를 쳐들게 되는 것이다. 우리는 과거 우리의 경험에서도, 다른 나라의 민주화과정에서도 그런 예를 자주 봐왔다. 우리가 정치에 쏠리는 집단적 경도를 유익하게 보면서도 동시에 이를 경계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아직은 우리 사회가 위험할 정도까지 해이해진 것은 분명 아니다. 대다수 근로자들과 농민들은 생산 현장에서 열심히 일하고 있고, 그 덕분에 우리 사회는 변혁의 소용돌이를 충분히 수용할 만큼 안정되게 굴러가고 있다.
그러나 네거리의 교통신호가 고장난 채 방치되고 있는 사소한 예로부터 일부 관청에서 드러나고 있는 행정공백 상태에 이르기까지 그대로 방치될 경우 심각한 이완현상이 확산될 수 있는 초기 증상이 곳곳에서 눈에 뛴다.
특히 우려되는 것이 경제분야의 정체상태다. 대우조선·한국중공업·연합철강 처리문제, 추곡수매가, 한은법 제정 등 시급한 현안들이 산적해 있음에도 불구하고 결재서류가 제대로 돌아가지 않거나 방향설정을 못해 해결이 늦어지고 있다.
또 정책 사안들인 통상마찰, 외환자유화, 세제개혁, 금리자유화 등 더 이상 지체할 수 없는 안건들도 누구하나 소신과 책임감을 갖고 추진·독려하는 사람이 없다.
국정감사다, 5공 비리청문회다 해서 어수선한 분위기에다가 개각을 비롯한 인사쇄신 조치가 임박하자 변혁기에는 가만있는 것이 최선의 호신 책이라는 관료사회의 나쁜 타성이 행정부의 무기력을 더욱 부채질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 사회가 당면하고 있는 민주화의 변혁은 아직 갈 길이 멀다. 넘어야할 산도 많고 건너야할 강도 깊다.
그 험로를 나아감에 있어서 국가라는 배가 지나치게 기우뚱거리지 않기 위해서는 사회의 기본적 기강이 유지되어야하고 무엇보다도 민생의 바탕이 되는 경제가 적어도 현재의 수준으로라도 유지되는 것이 절대적 요건이 된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사회의 이완증상이 중증으로 악화되기 전에 기강을 바로잡고, 정치가 당장의 최대 관심사라 할지라도 장기적으로 볼 때 경제적 안정이 민주화 작업의 성공을 담보하는 최상의 토대라는 점을 재삼 강조하는 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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