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문도의 후안무치|김진<정치부 기자>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5면

80년 우리언론의 상황과 뗄래야 뗄 수 없는 두 이름이 21일 국회청문회 증언대에 섰다.
통폐합을 주관한 허씨와 보안사의 「언론대책반」을 이끌었던 이씨는 그러나 언론인 7백17명의 대학살의 책임을 모면하려고 『모른다』 『관계없다』만 연발했다.
신문기자출신으로 5공 언론정책을 주물렀던 허씨는 해직대상자명단을 취합한 언론대책반이 『있었는 줄도 몰랐다』고 했고 이씨는 『지시를 내렸던 권정달씨가 없어 답답할 뿐』이라는 답변만 거듭했다.
그들은 당장 손닿는 거리에 있지 않은 권씨의 손에 열쇠가 쥐어있는 것처럼 떠넘겼다.
당시 그처럼 나돌던 「언론해직」이 그들의 귀에는 전혀 들리지 않은 것처럼 후안무치한 부인이었다.
나는 새도 떨어뜨릴 것처럼 당당한 권세를 쥐고 주물렀던 그들이 이렇게 뻔뻔할 수 있는 것인가.
그들은 쫓겨난 기자들에게 아무런 책임이 없는 것으로 시치미를 뗄 판이다.
더욱 가관인 것은 허씨는 『기자해직에도 혁명적 권력은 가동했다』며 그 초법성을 강변하고 이씨는 『계엄업무를 방해했던 제작거부주동자를 추려냈던 것』이라며 정당성을 강조했다는 점이다.
이들의 엉뚱한 혁명론, 낯뜨거운 거짓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술로 시름을 달래다 일찍 간 해직기자의 개인적 비극을 끄집어내지 않아도 세계역사상 유례가 드물었던 80년 언론학살의 실상을 이들이 참으로 알고나 있는지 묻고싶은 것이다. 몇몇 사람의 그릇된 역사논리가 얼마나 큰 인간적 비극으로 연결됐는지를 이들은 아직도 외면하고 있는 것이다.
이제 그들의 말대로 전두환씨는 「삭풍의 광야」에 내몰리게됐다. 그들은 지난날 자신들의 손으로 「삭풍의 광야」에 내몰렸던 언론인들의 황량한 마음을 촌도이나 하느 것인지 모르겠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