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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帝가 강탈한 조선 '북관대첩비' 야스쿠니 숲에 방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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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3면

1백여년 전 일제에 의해 강탈돼 도쿄(東京) 내 야스쿠니(靖國)신사 숲에 팽개쳐져 있는 국보급 문화재 '북관대첩비(사진)'의 반환을 놓고 신사 측이 터무니없는 반대 이유를 늘어놓을 뿐 아니라 몰래 훼손할 가능성도 제기돼 문제가 되고 있다.

북관대첩비는 1592년 임진왜란 때 정문부(鄭文孚)장군이 민병 7천여명으로 의병단을 조직해 왜군을 격파한 것을 기념, 숙종 때인 1709년 함경북도 성진에 세워졌다.

높이 1백87cm.폭 66cm.두께 13cm 크기에 의병단의 활약상을 담은 1천5백여자의 한문이 새겨져 있다. 일제는 강제로 을사조약을 맺은 1905년 대첩비를 강탈해 야스쿠니 신사에 갖다 놓았다.

이 비의 의미를 축소하기 위한 의도로 풀이되고 있다. 야스쿠니 신사는 일제 군국주의 사상의 중심지였고, 지금도 태평양전쟁 A급 전범 14명 등 전몰자들을 군신(軍神)으로 숭배하고 있는 곳이다.

야스쿠니 신사는 3년 전부터 대첩비를 일반인들이 들어갈 수 없는 신사 내 숲 속에 사실상 숨겨 놓았다. 전에는 외진 구석이지만 신사 내 길가에 자리잡고 있었으나 2000년 봄 전쟁기념관인 '유슈칸(遊就館)' 확장공사를 구실로 숲 속으로 옮긴 것이다. 안내판도 없어 일반인들은 대첩비가 있다는 사실조차 모르고, 찾아가도 높이 3m 철책으로 둘러싸여 있어 가까이 가서 볼 수 없다.

현재 숲 주변으론 단체 참배객의 대기장소를 만드는 공사가 2년 예정으로 진행되고 있다.

신사 측은 "앞으로도 북관대첩비를 현 위치에 놓아둘 계획이나 공사 뒤엔 숲 속으로 들어가 볼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숲이 울창하고 낮에도 어두컴컴해 대첩비가 있는지 알 수 있는 일반인이 얼마나 될지 의문시된다.

한국에선 민간 중심으로 대첩비 반환 요구 움직임이 있었다. 80년대에는 鄭장군의 후손이 반환 요구를 했으나 거절당했고, 99년에는 '북관대첩비 반환추진위원회'가 설립되기도 했다.

지난달에는 한 불교단체가 반환을 약속받았다는 이야기도 있다. 그러나 신사 측은 17일 "어느 한국 단체에도 반환 약속을 한 적이 없다"며 "남북 통일뒤 통일정부가 정식요청을 해야 가능할 것"이라고 밝혔다.

또 "북에서 가져온 것이기 때문에 한국에 반환할 수 없으며 가져올 때와 같이 남북이 하나가 돼야 하기 때문에 북에도 반환할 수 없다"는 설명을 늘어놓았다.

문화재 전문위원인 김정동(金晶東) 목원대 교수는 "일제 시대의 대포 등 무기와 군마(軍馬) 동상 등은 잘 보이는 곳에 전시해 놓고, 강탈해간 이웃 나라의 귀중한 문화재는 숲 속에 팽겨쳐 놓은 것은 상식 밖의 일"이라고 지적했다.

또 "일본에 치욕적인 내용이 담긴 비석을 숨기려는 것이겠지만 사람들의 관심이 줄면 몰래 파괴할 가능성도 있다"며 "통일 후 돌려주겠다는 것은 궤변이고, 빨리 반환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도쿄=오대영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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