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모의 윤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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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5공 비리 척결 과정을 지켜보면서 권력의 도덕성과 참모의 윤리성을 다시 생각지 않을 수 없게된다.
지금 단죄의 대상이 돼있는 각종 권력 비리가 전두환 전 대통령과 그 친척·인척을 중심으로 이루어졌고 거기에 청와대 비서실과 경호실이 깊이 개입돼 있었다는 사실은 국민적 통분과 경악을 금할 수 없게 한다.
일해 재단의 탈선적인 모금과 그 관리에는 장세동·안현태씨 등 역대 경호실장들이 간여했고, 전기환씨의 노량진 수산시장 운영권 탈취를 돕기 위해 민정 비서실 비서관들이 국세청·치안 본부 등 관계기관을 동원하여 협박을 가한 혐의를 받고있다. 그밖에 전두환 전 대통령의 사촌 형 전순환씨와 생질 김영도씨의 수뢰 사건에도 민정 비서실 직원들이 개입된 것으로 조사됐다.
이것은 국가의 정책결정을 보좌하는 핵심적 구성원들이 그 고유의 기능에서 벗어나 법과 질서를 파괴한 행위다. 그 때문에 5공 시절의 청와대는 마치 「범법 집단」 또는 「해결사」들의 아성 같은 인상을 주고 있다.
공권력의 힘은 막강하다. 그러나 거기에 윤리가 없다면 그것은 한낱 폭력에 불과하다. 공권력이 법을 떠나 행사되면 곧 범죄다. 도덕성과 합법성을 갖추지 못한 권력이 정통성을 인정받지 못하는 것은 그 때문이다.
국가 권력이 대통령에 집중됐던 5공의 청와대는 나라를 위해선 무슨 일이든지 할 수 있었던 만능의 권부였다. 그 조직의 참모들이 국가 발전을 위해 고심하고 분발한 흔적보다 비리의 흔적을 더 남겼다는 지탄을 받게 된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참모란 정책을 연구·기획하여 건의하는 것을 기본 임무로 하는 전문가 그룹이다. 더구나 청와대 참모는 국가 경영정책의 최종 결정을 보좌하는 두뇌집단이다.
특히 이번 비리에 여러 모로 관련된 민정 비서실의 기능은 나라의 기층인 일반 국민과 국가의 정상인 대통령을 연결해 주는 일이다. 국민의 아픈 곳, 괴로운 곳을 살피고 권력에 의한 민폐가 없도록 감독하고 그런 사례의 진정을 받으면 즉각 시정케 하는 것이 그 임무다. 관의 부당 행위가 없도록 정책을 개발하고 제도를 연구해야 할 기관이기도 하다.
5공의 청와대 비서실과 경호실은 정책 보좌와 경호라는 본래의 사명을 저버리고 전두환 당시 대통령의 개인비서로 전락, 막강한 국가 권력을 남용하여 전씨 친·인척의 이권 도모에 앞장선 것은 도덕적으로나 법률적으로 용서될 수 없다.
지금 우리는 왜곡된 과거를 청산하고 새 질서를 세워 나가는 과정에 있다. 방법은 평화적, 합법적이지만 그 내용은 혁명이다. 이 평화 혁명방식은 6·29를 계기로 이룩된 국민적 합의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공권력의 도덕성 회복과 공직자의 윤리성 확보다.
이를 위해 과거에 저질러진 권력의 비리를 철저히 파헤쳐 사법적으로 엄단해야 한다. 노태우 대통령의 말처럼 여기엔 어떠한 성역도 있을 수 없고 예외가 인정돼서도 안 된다. 다음은 청와대 구성원을 포함한 현역의 모든 공직자의 엄숙한 윤리적 결단이 수반돼야 한다.
이 같은 「과거의 엄단」과 「새로운 결단」이 결합될 때 사회 정의와 국민화합도 실현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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