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씨 문제와 야당의 자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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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전두환 전 대통령이 모처럼 자기문제에 대해 해명·사과할 뜻을 밝힘으로써 오늘날 우리 발목을 잡고있는 전씨 일가문제의 해결 숨구멍이 가까스로 트이는가 했으나 집권측과 정치권의 소극적 자세로 인해 여전히 빠른 해결은 어려운 것 같은 형국이다.
5공 비리와 전씨 일가 문제는 우리의 전진을 가로막는 족쇄일 뿐 어느 누구도 이 문제를 질질 끌어 득을 보거나 보려해서는 안될 문제다.
그 빠른 청산을 위한 책임은 물론 집권측에 더 무겁게 걸려 있지만 야당이라고 해서 외면할 수는 없는 일이다.
그런데도 오늘날 정치권의 움직임을 보면 집권측은 문제처리의 과정에서 어떻게 하면 정치적 손상을 극소화할 수 있을까 하는 보신주의에 빠져 있고, 정부·여당을 몰아세우고 국민이 납득할 처리방안을 제시해야 할 야당들은 여권과 여론의 동향을 살피면서 소극적인 운신에 머무르고 있다.
우선 집권측으로서는 5공 문제의 처리과정에서 정치적 손실을 입을 각오를 해야 한다. 5공 시절의 문제로 6공이 타격을 받을 필요가 어디 있느냐는 말이 나오지만 6공의 뿌리가 5공이요, 5공의 모든 요소가 같은 여권으로 혼재하고 있음을 집권측은 시인해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야당과 여론의 압력으로 전씨 일가의 결심을 유도하고 그 결심의 결과에 대해서는 책임을 지지 않겠다는 식으로 비쳐지는 집권측 일부의 발상은 당연히 버리는 것이 옳다. 미국의 워터게이트사건 때 「포드」대통령이 「닉슨」 전 대통령 문제에 직접 나섬으로써 본인은 정치적으로 큰 상처를 입었지만 사건의 빠른 마무리는 가능했던 사례 같은 것도 집권측은 참고로 해야 할 것이다.
노 대통령이 「포드」가 취한 것과 같은 유사한 방식을 취한다면 여론과 야당의 비난을 받겠지만 전씨 일가가 결심하기는 보다 쉬울 것이다. 그리고 야당으로서는 집권측이 그만한 타격을 입는 것으로 어느 정도 만족할는지도 모른다. 꼭 이런 방식을 취하라는 것이 아니라 집권측이 최소한 이런 정도의 각오나마 가져야 문제의 보다 빠른 해결이 가능할 것이라는 얘기다.
야당들은 이 문제에 있어서도 「야대」의 책임을 잊어서는 안될 것이다. 오늘날 정국의 주도권이 야당에 있는 이상 야당 역시 이 울적한 문제의 빠른 해결을 위해 적극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주지 않으면 안된다. 여권이나 여론의 동향을 보고만 있을게 아니라 전씨 일가문제의 처리방안을 나름대로 제시하고 문제해결의 추진력을 확보하기 위한 3야당의 공조체제가 필요하다고 본다.
야당 스스로도 5공의 연내청산을 강조하는 등 빠른 청산을 내세우고 있지만 이를 위한 실천적 노력은 그동안 미흡했던게 사실이다.
이제 전 전 대통령이 해명·사과의 뜻을 밝혀 본질문제에 접근하는 국면을 맞은 만큼 야당들은 보다 적극적인 자세로 나가기 바란다. 필요하다면 3김 총재회담 같은 모임을 갖고 대국적으로 가장 바람직한 해결방안을 공동으로 제시하여 문제를 주도적으로 풀어나가는 자세도 있음직 하다고 본다.
여론에 맞춰 당론의 강도를 그때그때 결정하겠다는 것은 책임 있는 정치인의 자세가 아니다.
요컨대 전씨 본인의 결심이 가장 중요하지만 집권측과 정치권의 결심도 아울러 중요함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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