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동물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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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어제 신문을 보면 최근 일본 신주쿠(신숙)시의 한 동물원「희귀동물」 우리에 「인간」우리가 만들어져 관람객의 눈길을 끌고 있는 모양이다.
원숭이 우리처럼 빈 타이어로 된 그네를 매달아 놓은 이 우리의 팻말이 걸작이다. 동물의 종류는 「사람-호모 사피엔스」. 분류는 「영장류」. 분포는 「전세계」.
인간의 조상은 1억년 전부터 진화해온 영장류 가운데서도 인류에 가장 가까운 유인원으로부터 갈라져 나왔다.
감종하지 않고 오늘날까지 존속하고 있는 영장류의 종류는 작달막한 쥐, 여우, 원숭이에서 듬직한 고릴라에 이르기까지 매우 다양하다.
현재 우리가 보고 있는 유인원은 지난 1친5백만년 이상 진화해온 결과다. 인류 역시 그만한 기간을 거쳐 진화해 왔다. 그러나 만물의 영장이라는 인간이 아직도 동물과 크게 달라지지 않은 부분이 많은 것을 보고 새삼 부끄러움을 느낄 때가 있다. 아니 어느 부분에서는 동물보다 한술 더 뜨는 경우도 있다.
그래서 유전학자 「멘델」은 『인간은 자기 자신 속에 모든 종류의 동물모습을 구현하고 있다』고 실토했다. 그에 의하면 인간의 속성 가운데는 쥐를 가지고 장난하는 고양이의 잔인성, 다른 사람의 흉내를 잘 내는 원숭이의 모방성, 뼈다귀를 주면 누구한테나 꼬리를 치는 개의 아첨성, 파리를 유혹해서 그물 속에 끌어넣고 그 피를 빨아먹는 거미의 흡혈성 등이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지난번 국정감사를 통해 드러난 5공의 비리를 보면 「멘델」의 평점은 오히려 후한편이다.
남이야 굶건 말건 먹이란 먹이는 혼자 독차지하는 돼지의 탐욕과 독식성이 있는가 하면, 구석구석에 먹을 것을 잔뜩 숨겨 놓고도 아무 것도 챙긴 게 없다는 오리발식 부정직성은 동물의 세계에서도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런가하면 누가 무어라든 상전의 비위를 사기 위해 오직 한곳으로만 치닫는 산돼지의 저돌성, 장소와 상황에 따라 말과 행동이 바뀌는 카엘레온의 표변성, 남이야 궁지에 몰리든 말든 자기 발뺌만 일삼는 여우의 간교성 등 가장 추한 동물적 속성이 여지없이 드러났다.
그런 뜻에서 일본 동물원의 「인간」우리는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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