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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문회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1983년 9월 미국 하원의 한 특별위원회에선 보기 드문 광경이 벌어졌다. 열 살을 갓 넘은 소년, 소녀가 열변을 토하고 있었다.
『핵전쟁이 무섭다고 그렇게들 법석거리면서 무슨 대책이 마련되어야 하지 않겠어요? 솔직히 말해 우리는 무섭단 말이에요』
소녀의 눈에선 금방 눈물이 뚝뚝 떨어질 것 같았다.
『어른들은 우리들이 마음놓고 살수 있도록, 또 우리 동생들이 웃으며 살수 있도록 해주셔요. 왜 우리는 평화라는 원칙 하나만을 가지고 살수 없어요?』
소년은 테이블이라도 꽝 칠 것 같았다.
이들은 미 하원의 청소년 문제특별위원회가 주관한 청문회에 나온 어린이들이었다. 어린이들의 핵전쟁에 관한 공포, 슬픔, 분노, 무력감, 냉소를 어떻게 해소시켜 줄 것인가가 토론의 주제였다.
미국이나 영국처럼 의회주의가 진작부터 발전해 있는 나라에선 청문회가 흔히 있는 일이다. 이해당사자를 대표할 수 있는 사람은 누구나 나와 증언할 수 있다.
한때 미국 의원들은 자신의 의회 업적을 쌓기 위해 우리 나라문제를 청문회에 단골 주제로 내걸던 시절도 있었다.
비단 정책입안이나 법안심의뿐 아니라 세상에서 논란이 되고 있는 문제들을 조사하는 청문회도 있다. 명칭도 조사청문회(인베스티게이트 히어링)라고 한다.
1960년 중반 베트남전쟁에 관한 청문회, 1970년초 워터게이트사건에 관한 청문회는 대표적인 경우다.
민주사회에서는 입을 가진 사람이면 누구나 자기 의견을 개진할 수 있는 권리가 있다. 그러나 그 많은 사람들의 얘기를 다 듣자면 한이 없다.
국민의 대표기관인 의회는 그 장치를 위해 청문회라는 제도를 만들었다..
이런 과정을 거치고 나면 건실한 여론이 형성된다. 우리 나라에서도 새 국회법에 따라 청문회 제도가 생겨 머지 않아 선을 보여주게 되었다.
그 첫 주제가 언론탄압에 관한 진상규명이다. 다른 주제도 아니고 언론자유의 문제를 다루는 것은 민주정치의 시험을 치르는 것이나 다름없다. 누가 얼마나 진실을 얘기하는지 국민은 지켜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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