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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때 있는 문책인사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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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면보기

종합 02면

『새 공화국은 능력이 부족한 공직자는 용납하지만 부정·비리를 저지르는 공직자는 단호히 처리할 것이라는 점을 명심하라』-. 노대통령이 국정감사에서 드러난 비리 관련 공직자에 대한 인책을 지시하면서 한 말이다.
노대통령의 이 같은 지시에 따라 정부·여당은 장관급을 포함한 10여명의 공직자에 대한 인사 조치를 곧 단행할 것이라고 한다.
어떤 사안과 관련해 어떤 공직자들을 인사 조치할지는 뚜껑을 열어봐야 알겠지만 정부·여당이 이번 기회에 얼마만큼의 결의로 어느 정도의 인사를 단행할지는 큰 관심사가 아닐 수 없다.
단순히 국정감사에서 드러난 각종 비리의 움직일 수 없는 증거 때문에 여론의 대세에 밀려 소수의 관련자를 마지못해 인사조치하는 것인지 그야 말로 5공 청산의 차원에서 적극적인 의지를 갖고 지난 세월의 적폐와 관련된 공직자들을 이번 기회에 정리할 것인지 여권의 의도를 아직은 가늠키 어렵다.
국정감사에서 쏟아진 수많은 5공 때의 비리·의혹·특혜 등은 모두 공직자와 관련되지 않은 게 없고 그럼에도 이들에 대한 문책인사가 5공 시절에는 물론 6공에 들어와서도 제대로 한번 단행된 적이 없다.
국감에서 드러났다시피 문제가 된 비리나 특혜는 모두 공직자들이 압력을 가했거나 방조 또는 묵인했거나, 직권남용 또는 직무유기를 함으로써 이뤄졌다.
가령 수의계약을 함으로써 특혜가 발생했고 감독·확인을 해야 하는데도 직무유기 또는 직무 소홀로 인해 부실이 나왔다. 이처럼 책임을 다하지 못한 공직자들에 대해사안별로 형사상 또는 인사상의 책임을 묻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다. 뿐만 아니라 소관분야에서 중대한 비리가 저질러졌거나 사회적 물의를 빚었다면 그 기관장에 대해서도 도의적, 정치적 책임이 추궁돼야 마땅한 것이다.
이처럼 책임을 물어야 책임행정도 가능해지고 행정에 대한 국민신뢰나 행정추진의 효율도 높아질 수 있다.
그런데도 현정부는 정권을 인수한 후에도 전 정권의 그 허다한 말썽을 잘 알면서도 내부적으로 자체 정리하는 노력을 보이지 않았고 오히려 당정의 골격에서부터 일반인사에까지 전 정권적 요소를 온존, 방치하는 모습을 보여 주었다.
인사에 있어 가장 실망스런 정부라는 혹평이 임기 초부터 나온 것도 이런 까닭에서다. 최근에도 탈주범 사건 같은 여론이 비등한 사건이 났지만 관련장관이나 실무자에 대한 이렇다 할 문책인사가 없었고, 각종 말썽의 장본인들이 계속 버젓이 공직에 남아있음을 보게 된다.
책임을 묻겠다던가 단호하게 처리할 것이라는 말이 한번도 실감나게 지켜지지 않은 것이다.
문책할 사안이 발생하면 그때그때 책임을 묻는 것이 옳다. 물론 정부가 정기국회 폐회 후 개각을 포함한 일대개편을 단행할 생각으로 알려져 있고 그러자면 그때 가서 전반적인 인사를 단행하는 것이 모양도 좋고 임면권 자의 인사의지도 뚜렷이 반영할 수 있음을 이해한다. 그러나 문제가 이미 표출된 이상, 그리고 어렵잖은 행정적·사무적 사실확인으로 문제의 공직자를 밝힐 수 있는 이상 그런 문책인사까지 개각 때까지 기다릴 필요는 없을 것이다. 설사 장관급이 대상으로 올랐다 하더라도 개각 때까지의 불과 두어달동안 차하급자가 대항할 수 없을 만큼 그의 존재가 긴박하다고는 믿어지지 않는다.
공직자 인사문제에 있어 이런 견해를 밝히는 것은 6공 들어서의 인사가 너무 기대에 못 미치고 비슷한 실망을 이번에 또 한번 하게 될까봐 미리 경계하자는 뜻도 있는 것이 사실이다. 노대통령의 지시처럼 이번에는 실기하지 말고 단호한 의지를 보여주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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