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새 출발점에 섰다-올림픽 이후의 우리의 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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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평화, 화합, 전진을 내 걸고 16일간 이 땅에서 펼쳐진 제24회 올림픽 제전이 2일 만족과 환희 속에 끝났다. 1백60개국에서 1만3천여 선수가 참가, 사상 최대규모가 된 서울 올림픽은 개회식에서 경기운영, 폐막행사에 이르기까지 세계가 칭찬하고 우리가 자랑할 만큼 성공적이다.
우리가 쟁취한「아시아의 정상」과 「세계 제4위」의 성과는 세계가 놀라고 우리 자신도 예상할 수 없었던 또 하나의「한강의 기적」이다.
이것은 그 동안 우리가 피 땀으로 이룩한 국가 저력의 결과일 뿐 아니라 우리 겨레가 지닌 가능성의 과시다.
내외의 위협 속에 시작된 서울올림픽의 성공은 우리 올림픽 당국의 우수한 관리능력과 국민의 높은 시민정신, 그리고 첨단기술의 폭 넓은 활용 때문이었다.
올림픽 당국은 지난 7년간 빈틈없는 계획을 세워 차질 없이 행사를 운영해 왔다. 올림픽은 우리 경험으로는 너무나 복잡하고 까다로운 행사다. 그럼에도 행사 진행은 아무런 차질 없이 물 흐르듯 진행돼 IOC당국자들도 『사상 가장 훌륭한 올림픽』이라고 평가했다.
올림픽을 성공시키려는 국민의 시민정신은 2만7천명의 자원봉사자들의 참여로 나타나기 시작했다. 보수 없이 궂은일, 힘든 일을 도맡아해 낸 그들이 없었다면 그런 규모의 올림픽은 해낼 수 없었다. 자가용 승용차의 홀·짝수 제한 운행에도 95%의 참여 율을 보였다. 3백18 만 명의 관객들은 우리 선수에 대한 열렬한 응원과 외국선수에 대한 공정한 매너로 우리 국민의 성숙된 시민수준을 더욱 돋보이게 했다.
우리 기술 수준도 올림픽 성공에 크게 기여했다. 장엄하고 찬란한 개회, 폐막행사에서 순조로운 경기운영, 신속한 상황보도와 선수의 약물검사에 이르기까지 첨단기술이 광범히 도입됐다.
그러나 올림픽을 성공시킨 힘의 근원은 탄탄한 경제력과 민주 지향적인 사회환경, 그리고 국민의 단결에서 찾아야 한다.
올림픽의 성공여부는 다음 두 가지 기준에서 평가돼야 한다. 하나는 올림픽을 계기로 우리가 세계에 어떻게 기여했는가 이고, 다음은 올림픽이 우리의 발전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가.
서울 올림픽은 그 주제가가 말해주듯이 『손에 손잡고 벽을 넘어서』인류가 다시 한 마당에 모여 우정과 협력을 나누게 했다. 이념과 국익 차이로 두 번이나 반쪽행사로 끝났던 올림픽이 12년 만아 동서진영이 한데 모인 세계적 행사가 된 것은 더욱 뜻 깊은 일이다.
체육 면에서도 서울대회는 많은 신기록과 새 선수를 배출했다. 세계 신기록 33개와 올림픽 신2백27개는 과거 어떤 대회보다도 풍성한 성과다.
그러나 이번 올림픽의 최대 수익국은 주최국인 우리 한국이다. 우리는 노력한 만큼의 성과를 얻었다고 자부할 수 있다.
첫째는, 국민의 자긍심 제고다. 어려운 행사를 성공적으로 치르고 높은 성과를 올림으로써 국민들은 어떤 일도 해낼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질 수 있게 됐다. 우리 공동체에 대한 자부심과 충성심도 고양됐다.
둘째는, 체육 면의 성과다. 공산권이 불참한 84년 LA대회에서 금메달 6개로 10의였으나 이번에는 전 세계가 참가하고도 금 12개에 4위로 약진했다.
세째는, 외교환경의 개선이다. 지금 우리 외교의 최대 과제는 북방외교의 개척이다. 올림픽을 계기로 헝가리와의 국가관계가 성립됐다. 이것은 다른 동구국가로 확대 될 전망이다. 소련과의 관계도 상당히 근접됐고 올림픽 이후 더욱 진전될 것으로 보인다.
네째는, 새로운 문화적 교류다. 올림픽 행사와 올림픽 문화축전을 통해 우리문화의 세계적 보편성을 보여주고 공산권 문화를 비롯한 세계의 문화를 새로이 접한 것은 큰 소득이다.
이처럼 서울올림픽이 여러 가지 긍정적 성과를 기록했지만 선수들의 약물파동과 심판의 판정물의, 그로 인한 소란사태는 오점으로 남을 것이다.
권투경기의 부당 심판은 세계스포츠의 오랜 숙제다. 이것은 국제 권투기구의 구조적인 체질개혁과 심판원의 자질개선 없이는 해결 될 수 없다. 권투장 소란에 대한 NBC의 편향보도로 시작된 한미간의 갈등은 양국관계를 재검토하여 자생하는 계기가 됐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다.
이런 서울 올림픽의 흠들이 서울올림픽의 의미를 훼손할 정도는 못 된다. 그러나 우리는 올림픽 성과에 만족해선 안 된다. 후발국가인 우리에게 올림픽은 또 하나의 시작일 뿐이다. 올림픽 이후의 우리의 과제는 올림픽의 성과를 수용하고 지속시켜 나가는 일이다. 우리가 스포츠 강국에 머물러 있다면 아무런 의미가 없다.·올림픽에서 얻은 것을 다른 분야로 확산시켜 사회전체를 그 수준으로 끌어올려야 한다.
올림픽 이후 우리는 많은 시련을 겪게된다. 제5 공화정의 청산과 새 정치의 질서정립에서 많은 분규가 예상된다. 경제도 불투명하다. 남북관계와 운동권 동향, 노사관계도 낙관하기 어려운 상태다. 그러나 올림픽에서 선양된 국민적 자긍심과 참여 정신을 바탕으로 임한다면 그 같은 도전은 극복될 수 있다.
정치는 민주화 속도를 가속시켜 국민적 일체감을 확대 재생산 시켜나가야 한다. 우리가 당면한 경제적 병목현상도 국제거래의 다변화를 통해 조정해야 한다. 이것은 북방외교의 강화로 해결될 수 있다.
이제 성화는 꺼졌다. 깃발들도 내려졌다. 우리는 보다 비장한 각오로 대처해 나가야 한다.
『더 빨리, 더 높이, 더 힘차게』는 계속 우리의 구호가 돼야 한다. 올림픽은 우리를 세계의 선두에 세워놓았다. 여기서 후퇴하거나 탈락돼선 안 된다.
올림픽을 성공시킨 단결과 참여, 인내의 정신으로 「세계의 한국화」, 「한국의 세계화」를 계속 밀고 나가야 한다. 여기서 성공할 때 서울 올림픽은 진실로 합격판정을 받을 것이다. 서울 올림픽의 진정한 가치와 의미는 거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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