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슨-루이스 세기의 대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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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세계에서 가장 빠른 사나이들끼리의 대결은 그들이 지니고 있는 명성에 걸맞게 영원히 잊지 못할 감동적인 순간을 연출해냈다.
레이스 시간이래야 9초여라는 눈 깜짝할 순간에 불과하지만 세계최고기록보유자 「벤·존슨」과 LA4관왕「칼·루이스」, 두 영웅들이 한발 한발을 떼어놓을 때마다 잠실 메인스타디움을 가득 메운 7만여 관중들은 탄성을 연발했고 「존슨」이 세계신기록으로 골인할 때는 심장의 고동이 멎는 듯한 전율마저 느낄 정도였다.
역대 올림픽사상 이렇게 박진감 넘치는 명승부가 과연 또 있을까 할 정도로 이날의 레이스는 전세계 40억 인구를 열광시키기에 충분했었다.
이날 레이스를 분석해보면 「루이스」가 제기량을 십분 발휘하지 못해 패한 것이 아니라 「존슨」이 모든 면에서 「루이스」를 압도했음을 쉽게 알 수 있다.
우선 스타트시 출발 총성에 대한 반응에서 볼 때 「루이스」가 0초136 이후에 출발동작을 시작한 반면 「존슨」은 0초132의 반응도를 보이고 있다.
지난해 세계선수권대회에서 「존슨」이 0초129, 「루이스」가 0초196을 기록한 점을 감안하면 사실 「루이스」로서는 가장 좋은 스타트를 한 셈이고 「존슨」은 비록 0초004를 앞섰다고 하지만 자신의 특기와 주무기가 「제트 스타트」로 불리는 빠른 스타트인 점을 고려할 때 만족스러운 결과라고는 볼 수 없다.
「존슨」이 이처럼 스타트에서 부진을 보인 것은 1시간 전에 벌어진 준결승에서 부정출발인 이른바 「플라잉 스타트」를 시도하다가 적발, 심리적으로 상당한 부담감을 느꼈던 것 같다.
「존슨」은 자신의 코치를 통해 심판부에 대해 부정출발이 아니었다고 강력히 항의했지만 출발 측정기에 나타난 「존슨」의 반응도를 보면 생리학상인간의 한계로 규정돼있는 0초1을 훨씬 앞선 0초083초를 기록하고있어 변명의 여지가 없는 셈이다. 그러나 문제는 출발에서부터 60m 지점까지의 초반 대시.
「존슨」은 60m지점에서 6초37을 기록, 지난해 로마 세계선수권대회에서 세계최고기록(9초83)을 수립할 당시 자신의 기록인 6초38보다 0초01 앞선 비슷한 기록으로 통과했다.
반면 「루이스」는 20m 지점에서 「존슨」에게 0초07 뒤지는 초반대시부진을 보였고 60m 지점에서는 무려 0초16이나 뒤지고 말았다. 라이벌 「존슨」을 지나치게 의식한 탓이다.
「루이스」 자신은 경기가 끝난 후 기자회견에서 「존슨」을 전혀 의식하지 않았다』고 부인하고 있지만 레이스 당시 60m 지점까지 세 번씩이나 「존슨」쪽을 쳐다봤던 사실만으로도 얼마나 라이벌을 의식했는지 짐작케 하는 대목이다. 따라서 실질적인 승부는 60m 지점까지의 레이스에서 판가름났다고 해도과언은 아니다.
물론 후반 스피드에 강한 「루이스」가 60m에서 80m 지점까지 20m를 2초53으로 역주, 2초56을 마크한 「존슨」 에게 0초03 따라붙었지만 앞서가는 라이벌을 추월하기에는 역부족 이었다.
여기서 한가지 특기할 만한 것은 후반 스피드가 약한 것으로 정평이 나있는 「존슨」이 이날 레이스에서 보여준 질풍 같은 라스트 스피드는 놀라운 것이었으며 9초8대를 깨뜨린 9초79의 세계기록 수립이 가능한 것도 바로 이같은 라스트 스피드에 힘입은 것으로 풀이 될 수 있다.
결전에 대비하기 위해 예선전에서 부진한 기록을 보인 것과 준준결승에서는 탈락위기까지 자초하며 컨디션을 위장했던 「존슨」의 계략은 웃음을 자아낸다. 그러나 이것은 비상한 집념의 경쟁의식이 얼마나 무서운 힘을 발휘하는지를 증언해주는 재미있는 대목이다.
「존슨」은 「루이스」를 꺾기 위해 자신의 상대적 약점인 레이스후반부 스피드를 강화하려는 각고의 노력을 기울여 왔으며 마침내 서울의 대무대에서 완벽하게 결실을 본 것이다.
이제 남자1백m는 9초6대에 대한 새로운 도전에 나섰다. 「존슨」이 골인을 4, 5m 남겨놓고 여유를 보인 점을 감안하면 더 이상의 단축도 멀지 않다는 느낌이다. 스포츠 중 특히 기록경기가 지닌 도전과 창조의 아름다움을 다시 한번 음미해본다. 김창근<육상연맹 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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