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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 긍게 요즘 영화 사투리 빼면 꽝이랑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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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사투리, 리얼한 주연시대

최근 스크린의 사투리 열풍은 흥행영화와 나란히 불어닥쳤다. '친구'(2001년)는 "고마해라 마이 묵읏다 아이가" 같은 부산 사투리 대사를 유행어로 만들었고, '황산벌'(2003년)은 영호남 사투리를 삼국시대에 대입하는 기발한 상상력으로 '거시기'의 무궁무진한 용례를 선보였다.

상대적으로 낯설었던 강원도 사투리는 촌지 교사의 개과천선기 '선생 김봉두'(2003년)와 남북 병사의 마술적 화해를 그린'웰컴 투 동막골'(2005년)을 거쳐 순수하고 때묻지 않은 세계의 상징으로 굳어졌다. 이런 이미지는 고스란히 브라운관으로도 옮겨졌다. 방송 중인 드라마 '진짜진짜 좋아해'의 유진이나 '넌 어느 별에서 왔니'의 정려원은 강원도 산골 출신으로 설정돼 있다. 순박하고 강인한 인물의 성격을 단적으로 보여 주리란 계산이다. 특히 진한 사투리를 쓰는 유진은 드라마 홈페이지에 극중 대사를 표준말로 풀이하는 코너까지 만들어 놓았다.

스크린에서는 점점 사투리를 사실감의 필수요소로 인식하는 추세다. 외환위기 직후 부산의 마약밀매 현장을 그리는 '사생결단'(26일 개봉)이나 고분 도굴꾼의 이야기인 '마이캡틴 김대출'은 극중 배경과 실제 촬영지도 각각 부산과 경주였고, 해당 사투리가 영화 속 공용어로 등장한다. '사생결단'의 심보경 프로듀서는 "리얼리티를 살리려면 사투리를 쓰는 게 당연하다" 면서 "다양한 지역을 무대로 하는 영화 제작이 늘면서 사투리의 등장도 늘고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신세대도 사투리 필수

자연히 젊은 배우에게는 사투리 연기가 새로운 도전과제다. 그 어려움을 배우들은 "외국어로 연기하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입을 모은다. 사생결단의 류승범도 가외의 노력이 대단했다. 마산 출신인 황정민이 시나리오 전체를 녹음해 준 것을 토대로, 수시로 현지 스태프에 자문했다. 현장에서 대사가 수정되거나 즉흥대사가 필요한 경우에는 부산 출신 동료 배우와 휴대전화 녹음으로 사투리 대사의 뉘앙스를 전달받고 촬영에 들어갔다는 후문이다.

국내에서는 이처럼 해당 지역 출신의 조연 연기자나 스태프가 '사투리 교사'를 병행하는 경우가 많다. 별도의 교사를 두더라도 촬영현장에서의 도움이 필수라서다. 다음 달 개봉하는 '국경의 남쪽'에서 연인을 두고 탈북한 음악가를 연기한 차승원 역시 사전 준비단계에서는 북한 출신 의사가, 촬영 중에는 북한 출신 스태프가 주로 도움을 줬다. 사생결단은 출연 배우 외에 부산 지역 방송인이 사전 시나리오 읽기 과정을 도왔다.

이에 비하면 영화'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에서 사형수 역할을 맡은 강동원은 행복한 경우다. 경남 창원 출신인 그는 기존 꽃미남 이미지를 뒤집을 장치로 본인이 사투리 연기를 제안했다. 데뷔 초 표준말을 익히기 위해 "입에 볼펜을 물고 발음교정을 했다"던 그는 요즘 표준말로 쓰인 대사를 직접 사투리로 고쳐가며 촬영 중이다.

#지역적 편견을 버려라

사투리 연기는 적잖은 위험도 뒤따른다. 자칫'무늬만 사투리'라는 비난을 살 수도, 대사 전달력이 크게 떨어질 수도 있다. 주철환(이화여대) 교수는 "어설픈 사투리는 오히려 관객의 반감을 산다"면서 "특히 특정 지역이나 계층을 비하하는 식으로 쓰여서는 곤란하다"고 말한다.

다음달 개봉하는 '짝패'는 이런 점에서 흥미롭다. 액션물이면서도 주연들이 충청도 사투리를 쓰는 이색적인 조합이다. 제작사 외유내강의 관계자는 "충청도 사투리는 느리고 순박하다는 인상이 있는데, 실제로는 퍽 센 표현도 많다는 점에 착안했다"고 소개한다. 감독 겸 주연인 류승완을 비롯, 정두홍.이범수 등 주요 배우가 모두 충청도 출신이라는 점도 감안됐다.

반면 최근 촬영을 마친 '비열한 거리'에 조폭으로 나오는 조인성은 당초 시나리오에 대부분 전라도 사투리였던 대사를 실제 촬영과정에서 크게 완화시켰다. 자칫 배우에 대한 관객들의 기존 이미지를 거스를 것을 우려해서다. 극중 무대가 충남 서산인'맨발의 기봉이'(26일 개봉)도 주연 신현준의 사투리 억양이 별로 도드라지지 않는다. 오히려 어린아이 같은 마음을 지닌 실존인물 엄기봉씨의 독특한 말씨에 가깝다.

"서투른 연기자는 대개 사투리 억양을 지나치게 강조해요. 자연히 말이 거칠어지기 쉽죠. 그런데 한 지역 사투리를 잘하는 사람은 다른 지역 사투리도 잘하더라고요." 서울 출신이면서도 팔도 사투리에 능한 것으로 유명한 고은정씨의 말이다.

이후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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