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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시론

개인정보 보호제도 제대로 만들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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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개인정보 보호와 관련한 문제점 가운데 하나는 아직도 많은 공공기관.기업.개인이 정보 수집.이용 한계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고, 관련 제도가 제대로 자리 잡혀 있지 않다는 점이다. 예를 들면 단순한 거래를 위해서는 주민등록번호 등의 신상정보가 필요 없는데도 혹시나 앞으로 필요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 무조건 수집하는 관행이 있는데 이는 지양돼야 한다. 불필요한 정보를 모아 보관하게 되면 불법 유출이 됐을 때 이에 따른 책임도 있다는 사실을 명심해 꼭 필요한 정보만 수집하고 이용하는 제도가 정착돼야 한다.

최근에는 5.31 지방선거를 앞두고 당원.동창회 명부 등 각종 명단이 불법 유출되고, 이에 따른 개인.기관 및 지역의 피해 사례가 늘어나고 있다.

여기에는 많은 문제가 있다. 첫째, 개인의 동의를 받지 않고 개인정보를 타인이나 다른 기관에 제공하는 것은 개인정보의 자기결정권을 침해하는 것이다. 둘째, 불법으로 수집되거나 유출된 정보를 이용, 자신을 홍보하기 위해 여론조사 형태로 개인에게 연락을 취하는 것은 선거법 위반이다. 셋째, 이런 접촉에서 개인의 사생활 침해가 일어날 수 있다. 넷째, 잘못된 여론조사나 왜곡된 의견에 의해 후보가 결정될 경우 낙선자뿐만 아니라 주민들은 그 지역을 위한 좋은 인재를 선출하지 못하게 된다.

개인정보 유출은 이처럼 다양한 피해를 유발할 수 있기 때문에 처벌 수준과 방법, 피해자 구제 제도를 신중하게 만들어야 한다. 의도적으로 개인정보를 불법적인 용도에 이용하는 경우 더욱 강력하게 처벌해야 한다. 개인정보를 보관하고 있던 해당 기업이나 기관도 부실한 개인정보 관리 및 감독의 책임을 피할 수 없다. 더불어 '정보보호 인센티브 제도'를 만들 필요가 있다. 기업이 개인정보 보호 관련 제도 수립에 앞장서면 다양한 보상을 주고, 개인정보 보호 책임을 다하지 못하면 엄중하게 질책하는 것이다.

개인정보가 유출된 경우 일부 기업.기관은 신뢰상실.명예훼손 등을 우려해 감추는 경우도 있다. 그 결과 구제제도나 해결절차 적용 시기를 놓쳐 문제가 더 커지기도 했다. 해외 사례를 보면 개인정보를 수집하고 이용하는 주요 기관들은 항상 개인정보 보호에 적극적으로 앞장서고 있음을 강조한다. 또한 문제가 발생하면 즉시 관련 부처에 연락하고 대응조처를 강구하며, 문제에 대한 책임을 진다. 그러면서 보다 효과적인 개인정보 보호 제도의 개발과 보급에 앞장서고 있다.

개인정보와 관련된 법의 사각지대를 없애기 위해선 관계법 제정과 적용을 일관성 있게 추진해야 한다. 비교적 엄격한 개인정보보호법을 갖고 있는 독일은 최근에 일관성 있고 통합된 개인정보보호법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현재 우리 국회에는 세 가지 개인정보보호 관련 법안이 상정돼 있다. 국회는 이 법안들을 신중히 검토해 하나로 된 법안을 신속히 제정해야 한다.

개인정보의 악용과 부작용 규모가 앞으로 더 커질 수 있다는 우려가 지배적이다. 국가.공공기관.기업.시민단체.교육기관.개인 등이 모두 참여해 체계적이고 장기적인 개인정보 보호 제도를 마련하는 것이 시급하다.

김범수 연세대 정보대학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