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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담배를 보는 관점의 변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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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9면

김용익 국민건강보험공단 이사장

김용익 국민건강보험공단 이사장

오랜 세월 동안 담배는 수많은 사람의 벗이었다. 슬플 때 위로를 주고, 친구들에게 우정을 주고, 지친 삶에 활력을 줬다. 시인 오상순에게 담배는 영감의 원천이었고 처칠의 시가는 리더십의 상징이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흡연은 더는 취향이 아니다. 담배도 기호품이 아니게 되었다. 관점이 바뀌었다. 담배는 중독물질이며 흡연은 중독증일 뿐이다. 담배를 피워 물 때 느끼는 그 안락감은 중독물질을 주입할 때 느끼는 병적 쾌락이라는 것이다.

흡연이 ‘중독’이라는 인식이 생기자 ‘치료’를 해야 한다는 대책도 수립되었다. 정부와 건강보험은 금연치료를 지원한다. 이제 정식으로 보험적용을 해서 치료비를 수가로 지불할 계획도 있다. 이제 흡연은 어엿한 ‘질병’의 하나가 된 것이다.

1970년대 국무회의 장면을 기록한 사진에는 장관들 앞마다 재떨이가 단정히 놓여 있다. 흡연은 개인의 권리였고 사회적 관례였다. 90년대 초반에 이르러 필자가 속한 예방의학회 학술대회장에서 재떨이가 치워졌다. 남들에게 피해를 준다는 의식이 생긴 것이다.

타인이 피운 담배 연기가 단순한 불쾌함을 넘어 간접적인 흡연이 되고 발병요인으로 작용한다는 것이 밝혀지자 흡연은 권리가 아니라 ‘가해행위’라고 관점이 이동했다. 흡연자를 격리하기 위한 금연구역이 생기고 점점 넓어지더니 이제는 담배를 피울 곳을 찾기조차 어렵다.

그런데 아무의 눈에 띄지도 않고 연기도 희석되어 버리는 옥상이나 벌판에서 담배를 피운다고 피해를 주지 않을까? 아니다. 건강보험에서 2003년부터 2012년까지 10년간 담배로 인한 진료비 손실을 추정했는데 규모가 무려 10조1273억 원이었다. 그만큼 전 국민이 보험료를 더 부담해야 했다. 이제는 건강보험을 통해 담배 연기를 구경해본 적도 없는 사람들에게까지 피해가 전파되는 세상이 된 것이다.

흡연자 역시 담배회사의 이익을 위하여 희생된 피해자일 수 있다는 관점도 생겨났다. 건보공단은 흡연 피해 문제에 적극 대응했다. 공단은 2014년 담배회사들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고 지금도 진행 중이다. 담배 소송은 형식상 공단이 받은 손실을 확인하고 그 손해를 보전받기 위한 것이나 궁극적으로는 국민의 이익을 대변하는 소송이다.

담배를 보는 관점은 앞으로 더 변할 것이다. 1821년 토마스 드 퀸시가 ‘어느 영국인 아편중독자의 고백’이라는 고백록을 냈을 때 아편은 기호품이었다. 100년이 안 되어 아편은 마약으로 규정되어 의사의 처방이 있어야 사용하게 되었다. 아편은 뛰어난 진통 효과 때문에 지금도 유용한 약물로 쓰이고 있으나 담배는 그런 용도가 없다. 오래지 않아 생산이 중단되고 사라지고 결국 잊힐 것이다. 불필요하고 해롭기만 한 물건, 이것이 담배를 보는 최후의 관점이다.

김용익 국민건강보험공단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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