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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반만년 역사관광 "수박 겉 핥기 식"|문화재 안내원 부족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5면

신라 천년의 역사가 살아 숨쉬는 경주. 이 찬란한 민족유산이 자칫 빛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하게 될 위기에 처해 있다.
올림픽을 전후해 50만 명의 외국관광객들이 찾을 것으로 예상되는 경주에 관광안내원이 크게 부족, 문화재·사적지를 설명해 줄 수 없기 때문이다.
24일 오후 경주 통일 전 앞. 국내 관광객들 틈에 끼어 한식구조로 된 웅장한 통일 전 구석구석을 빠뜨리지 않고 살피는 일본인「와타나베」씨(40·회사원)는 답답하다는 표정으로 주위 사람들을 둘러본다.
한국에 온지 1주일 째 겪어 온 답답함이지만 경주를 둘러보면서 더욱 크게 느끼게 된 것이다.
『다른 곳에선 한자나 일본말을 대충 알고 있는 사람들이 많아 큰 불편은 없었으나 막상 경주의 숱한 유물·문화재 등을 대하고 보니 호기심을 채울 방법이 없었다』는 것.
『안내문이 너무 간단해 알 수 없는 것은 물론, 안내원이라도 있었으면 좋을 텐데 눈에 띄지 않아요. 외형만으로 어떻게 반만년을 자랑한다는 한국의 뿌리를 느낄 수 있습니까.』
안타까움이 섞인「와타나베」씨의 지적이다.
경주박물관서 신라시대 대표적 유물들을 구경하고 있는 일본인 학생「사미즈」양(19)과「기와하라」양(18)은 한국역사를 자세히 알고 싶어 아예 서울 H여행사에서 소개해 준 아르바이트 관광안내원 1명과 함께 관광을 하고 있다.
『서로 의사소통이 원활하지 못한 것은 물론 유물·역사 등에 관해서도 기초수준에 지나지 못하는 것 같아요.』『유물이나 문화재 전시와 함께 각국어로 된 관련 안내책자를 비치해 외국인들에게 도움이 됐으면 좋겠어요.』「기와하라」양의 불평은 외국관광객들의 대변이라고 해야 할 것 같다.
『의사소통을 자유자재로 할 수 없어 자신 있는 부분 외에는 눈치껏 슬쩍 넘겨 버리죠. 세세히 물을 때는 아는 사람이 없어 쩔쩔맬 때가 한두 번이 아니 예요.』
관광안내를 맡고 있는 조모 양(21)의 솔직한 답변이다.
미국인「토머스·앨런」씨(62)는 천마총을 찾았으나 궁금함만 더 커졌다.
『근처에 천마총에 관한 그림엽서 말고 한국역사 속에서 차지하는 문화사적 가치를 소개하는 상세한 책자를 파는 곳이라도 있었으면 좋겠어요.』「앨런」씨는『국제관광도시로 성장하려면 경주도 세세한 곳까지 신경을 써야 할 것』이라고 일침을 놓았다.
외국인을 상대로 관광안내를 할 수 있는 관광안내원은 경주시 5명을 비롯, 불국사·박물관·오능 등 중요 10개 관광지 1개소에 2∼5명씩 모두 50명 안팎.
경주시는 올림픽을 전후하여 50만 명의 외국인이 신라고도를 찾을 것으로 추산, 관광업소 종사원들에 대해서도 2개월간에 걸쳐 단기 관광안내교육까지 실시하여 부족한 인력을 최대한 해결해 보려고 노력중이다.
그러나 단기코스의 관광안내교육을 받은 관광업소 종업원도 총 4천명 중 32%인 1천3백 명에 그치고 있는 데다 외국어 실력이 거의 모자라는 상태여서 관광안내에 큰 도움을 기대하기는 현재로선 어렵다는 것이다.
특히 영어를 할 수 있는 사람은 있어도 불어나 독어·스페인어 등 다양한 외국어를 구사할 수 있는 사람들이 거의 없어 외국인 관광안내에 무방비상태라는 것.
불국사 등 사적지에 기념품판매점과 토산품판매점에서도 각국서 몰려든 외국인을 상대로 관광안내를 맡고 있으나 전문지식 등의 결여로 수박 겉 핥기에 지나지 않는다.
경주시 한 관계자는『관광안내 부족을 메우기 위해 관광안내자원봉사자 50명을 모집, 주요사적지에 배치하려고 교육을 시키고 있다』고 밝히고『전문지식은 교육할 수 있어도 외국어가 하루 아침에 가능한 것이 아니라 장기적인 관광대책이 재검토 돼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관광 1번 도시 경주의 안내원부족은 한국관광의 한계를 단적으로 말해 주는 것이다. 이번 올림픽은 외국인들에게 우리의 오랜 역사, 아름다운 전통을 깊게 심어 줄 수 있는 계기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 모두의 바람인 것이다. 【경주=김영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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