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외서 거센비난…궁지몰린 미국|이란여객기 격추파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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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워싱턴=한남규특파원】소련의 KAL기격추와 비슷한 사건이 미국에 의해 발생된데 대해 미국은 크게 당황하고 있다.
소련이 83정년 KAL기를 격추, 2백69명의 무고한 민간인을 희생시켰을 때 「레이건」대통령은 이를 「야만적 테러행위」라고 비난했다. 이란은 3일 그들의 민간항공기를 격추, 2백90명의 탑승객을 희생시킨 미국의 행위에 대해 「야만적 학살행위」라고 규탄했다.
미국정부는 이란의 F-14전투기를 격추시긴바 있지만 여객기 격추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고 부인하던 태도를 바꾸어 3일 민항기 격추사실을 시인했다.
마침 4일의 독립기념일을 맞아 캠프데이비드별장에서 휴가중이던 「레이건」 대통령은 성명을 발표, 「참혹한 비극」이라고 유감을 표명했다. 그러나 휴가는 변경없이 계속될 것이라고 백악관이 밝혔다.
그 대신 이 같은 여객기격추사실을 발표한 미합참의장 「윌리엄·크로」해군제독은 이번 사건이 소련의 KAL격추와는 성격이 다르다고 주장했다. 당시 소련은 KAL기에 대해 아무런 경고 없이 미사일을 발사했지만 미전함 빈센스호는 수차 여객기에 항로를 바꾸도록 경고했다는 것이다. 「포파듀크」백악관대변인은 방어행위라고 이를 설명하고 있다.
미정부는 이번 민항기격추사건과 이를 계기로 제기될 국내외 비판에도 불구하고 기존 페르시아만에 대한 개입 정책에는 변함이 없다고 밝히고 있다. 페르시아만 석유수송로를 보호하기 위해 앞으로 계속 미해군을 이 곳에 배치시킬 것이라는 얘기다.
미국의 해군배치 이유는 명분상으로는 국제법에 보장된 항해 자유의 보호다.
작년봄 이라크기에 의한 미스타크호 피격과 이란에 의한 쿠웨이트유조선 피격사건 이 후 강화된 미국의 페르시아만 개입에 관해 「와인버거」당시 국방장관은 영해상의 항해자유를 이유로 들어 『우리는 국제수역에서 추방될 수 없다』고 선언하고 특히 세계석유 유통량의5분의1을 담당하는 페르시아만 석유항로의 보호를 다짐했다.
그러나 엄밀히 따지면 그 같은 국제경찰의 사명 때문만은 아니다. 「리처드·머피」국무성근동 및 남아시아담당차관보의 말대로 미국 및 서방에 적대적인 이란과 소련의 세력을 저지하는 것이 좀더 절실한 미 개입의 배경이다. 이란의 저지를 위해 미국은 이들을 상대로 8년째 전쟁을 벌이고 있는 이라크를 지원하고 있다.
미국이 쿠웨이트 유조선에 성조기를 달아주어 페르시아만 항해를 보호하고 있는 것도 쿠웨이트가 이라크의 대외통로 및 항구역할을 대행해 주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은 이란을 봉쇄함으로써 소련의 페르시아만지역 진출을 방해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최근 이란의 국가지도자 「호메이니」가 중병에 시달리고 있다는 소식과 아울러 이란은 최근 유럽과의 관계개선을 모색해 왔으며 심지어 미국에 대한 태도도 조심스럽게 바꾸어 오던 터였다.
일종의 화해분위기 내지는 잠재가능성이 움트고 있던 것으로 파악돼 왔다.
이러한 시기에 민항기격추사건이 발생함으로써 미·이란 관계는 또 다시 악화의 구렁텅이로 떨어질 전망이다.
미정부가 아무리 경고사실을 설명하고 경고에도 불구하고 계속 접근하는 비행체에 대해 「적절한 방어행위」를 취한 것이라고 강조해도 상대방에게는 실득력이 없는 것이다. 미전문가들도 미사일을 공격하는 전함이 어떻게 빠른 속도로 비행하는 전투기와 그 보다 느린 큰 형체의 여객기를 구분할 수 없었는지 납득할만한 설명을 제공하지 못하고 있다.
이번 사건으로 페르시아만 뿐 아니라 다른 지역에도 상당한 영향이 예상된다.
그동안 미국의 페르시아만 개입에 대해 미내부에서도 상당한 비난이 있었던게 사실이다.미국이 이라크에 발목을 잡혀 이란·이라크전쟁의 수렁에 빨려들고 있다는 우려가 표명돼 왔다. 미정부의 페르시아만 정책에 대한 국내비판이 거세질 것 같다.
아직 소련이 사실보도에 그치고 있지만 미중동 정책에 대한 비판과 민항기격추 행위에 대한 규탄이 예상된다.
특히 미테러관계전문가들은 이란의 보복행동을 우려하고 있다.
이번 사건은 이란 과격파의 입장을 강화시킬 것으로 보고 있다. 미정부는 이미 각국 해외공관에 비상경계를 지시했다. 이란의 과격파 테러리스트로서는 행동의 명분을 갖추었기 때문에 심지어 미내부에까지 행동을 취할 것으로 보는 전문가도 있다.
특히 그렇지 않아도 테러위협에 전전긍긍하고 있는 서울올림픽의 안전문제에도 적색경고가 추가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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