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이「네도·나디」|「금」5개휩쓴 "펜싱의 달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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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24년 파리올림픽, 남자플러레 단체전 결승리그 이탈리아-프랑스의 경기. 프랑스가 3-1로 앞선 상황에서 프랑스의「루시앙·고댕」과 이탈리아의「알도·보니」가 맞붙었다. 두선수의 칼끝이 거의 동시에 상대를 스친 순간, 헝가리의 심판 「코박」이「고댕」의 득점을 선언했다.
「보니」는 대뜸 욕설을 퍼부었고 격노한 「코박」은 사과를 요구했다. 「보니」는 욕한적 없다고 시치미를 뗐으나 곁에 있던 이탈리아 태생의 헝가리팀 코치「산텔리」가 「코박」에게 욕한 것을 들었다고 증언했다.
이탈리아팀은 항의와 함께 철수, 고국에 돌아가 『「산텔리」가 자기가 지도하는 헝가리팀이 이탈리아와 맞붙어 질게 두려워 허위증언을 했다』는 비난성명을 발표했다.
이 소식을 들은 「산텔리」는 분을 참지 못하고 60이 넘은 나이에도 불구, 이탈리아팀의 주장 「아돌포·콘트로넬리」에게 정식결투를 신청했다.
정부의 허가가 떨어지자「산텔리」의 27세된 아들「조르지오」가 연로한 아버지를 대신해 결투를 떠맡겠다고 요청, 받아들여졌다. 이탈리아-헝가리 국경근처 아바지아란 소도시에서 두사람은 드디어 맞붙었으나 「산텔리」의 아들이 결투시작 2분만에 「콘트로넬리」의 머리를 찔러 쓰러뜨림으로써 아버지의 모욕을 씻었다.
이처럼 명예를 중시하고, 또 무명인이 국가대표팀 주장을 단 칼에 쓰러뜨릴만큼 선수층이 두터운 펜싱계를 한때나마 평정했던 인물이 바로「네도·나디」 (이탈리아)다.
그는 12년 스톡홀름올림픽에서 플러레 개인종목 금메달을 따내 「신고」를 마친뒤 8년후인 앤트워프올림픽에서는 플러레개인·단체, 사브르 개인·단체, 에페단체를 휩쓸어 올림픽 펜싱사에 유일한 한대회 5관왕의 영광을 차지한다.
그의 경기모습을 지켜본 사람들은 『완벽한 균형 감각, 전광석화같은 찌르기, 용수철이 튀어나오는 듯한역습…. 그 어느 것도 부족함이 없는 펜싱의 달인이었다』며 『금세기 최고의 검사 (검사) 』로 꼽는데 주저하지 않았다는 것이다.「나디」는 걸음마를 떼면서부터 펜싱도장 관장이었던 아버지로부터 펜싱을 익혀 10대중반에 이미 나름대로의 경지를 이루었는데 당시 그와 함께 펜싱을 배웠던 동생「알도·나디」도 형과 함께 올림픽에 출전, 단체전 우승에 크게 공을 세웠다.
「나디」는 모두 6개의 금메달을 목에건 뒤 프로로 전향, 아르헨티나의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펜싱교실을 열었으며 나중에 귀국해서 이탈리아 펜싱협회 회장을 지내다 40년 46세를 일기로영면했다.<김동균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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