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의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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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국회의장이 야당들로부터 집중공격을 받았다. 『그날이래 민주회복의 도정에 들어서게 된 사실이 감격스럽다』는 성명서를 발표한 것이 화근이었다.
「그날」이란 6·29를 두고 하는 말이다.
정치시비에 오지랖넓게 끼어들 흥미는 없다. 그러나 국회의장의 처신에 관한 논란엔 일리가 있다. 여야가 미묘한 견해차이를 보이고 있는 문제에 국회의장이 표나게 어느 편을 드는 것은 옳지않다.
국회의장을 민주국가에서는 「스피커」라고 한다. 「의장」이라는 의미보다는 글자그대로 「대변자」라는 뜻이다. 여기엔 유래가 있다. 몇백년도 넘는 의회사를 가진 영국의회의 경우, 의장은 국왕에 대해서 하원을 대변하고, 하원에 대해서는 국왕을 대변했다.
영국의 국회의장은 지금도 그 권위가 하늘만큼은 높다. 우선 국회의장은 다수를 차지한 당에서 추천되지만 반드시 그래야 하는 것은 아니다. 다수당쪽에서 야당에 그 자리를 넘겨주는 것은 하나도 이상한 일이 아니다. 적격자가 없으면 너무도 자연스럽게 상대당에 그 자리를 양보한다.
의장감을 고를때는 몇가지 까다로운 조건이 만족되어야한다.
우선 정치적으로 과격한 사람은 안된다. 반대당이나 어느 편에 대해서 모나게 시비걸기를 좋아하는 사람도 의장에서 제외시킨다. 각료출신도 기피한다. 행정부사정을 잘 봐주어서는 곤란하다는 생각이다.
의장을 한번 뽑아 놓으면 설령 의회가 해산돼 선거를 다시 치르고 여야의 관계가 뒤집혀도 의장만은 그대로 둔다. 의장이 선거에서 떨어지는 경우도 거의 없다. 그 지역구엔 아예 후보를 낼 생각을 어느당도 안한다. 의장은 그 자리에 앉으면 그날로 소속정당을 떠나는 것도 움직일 수 없는 관례다.
의장은 누구하고 밥도 함부로 먹지 않는다. 만나서 차를 마시는 것도 조심한다. 아무개 하고 친하다거나 유착되어 있다는 소리를 듣는 것을 스스로 피한다. 그 점에선 외롭고 재미도 없겠지만 그것을 보상하고도 남는 영예와 권위를 인정한다. 영국에선 하원의장이라면 절대 불가침의 자리다.
우리나라를 그런 나라와 비교할 처지는 못되지만 의장이 분별도 없이 성명서 선심이나 쓰는 것은 격을 생각해서라도 좀 뭣한것 같다. 야당이 시비를 할만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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