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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끝)오늘에 듣는 소크라테스 외침|엄임식 <서강대교수>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5면

나는 지금 2천3백여년전「소크라테스」가 신탁을 받았던 델피의 아폴로 신전에 와있다. 아직도 건재한 제단과 돌기둥이 때마침 몰려온 안개에 휩싸여 매우 신비스런 분위기를 자아낸다. 바로 여기서「소크라테스」는 위선과 타락과 궤변으로 소일하던 아테네시민들을 깨우치도록 아폴로 신으로부터 철학적 사명을 부여받은것이다. 그리하여 그는 소위「민주파」에 속하는 인사들에 의해 독신과 혹세무민의 죄목으로 기소되어 독배를 마실때까지 무엇이 과연 참다운 진리며 정의인지를 설파했었다. 짙은 안개속에 파묻힌 신전의 돌기둥 사이로 그의 절규가 울려 퍼지는듯하다.
『지혜와 전능에 빛나는, 가장 위대한 도시 아테네의 시민인 그대들은 치부와 평판과 명성을 얻기에만 여념이 없을뿐 지혜와 진리와 영혼의 개선에는 관심이 없고 신경도 쓰지 않는구나!』
「페리클레스」가 통치하던 아테네 시민들 못지않게 활기에 차있고 자부심과 긍지가 넘쳐 세계 어디를 가나 관심을 끄는 오늘의 한국인들에게「소크라테스」의 이 꾸짖음은 과연 어떻게 들릴 것인가. 요즈음 우리나라에서 벌어지고 있는 여러가지 사태들을 주시하고 또 분석해볼때 나는 우리의 앞날을 너무 낙관하거나 비관할수가 없다는 느낌을 갖게 된다.
우리는 분명히 활기에 차 있으나 너무 들떠있는것도 또한 사실이며 패망의 길을 재촉한 아테네의 시민들처럼 우리가 과연 누구인지를 모르는채 표류하고 있기때문이다.
우리가 참으로 누구인지, 지금 우리는 어디쯤에 있으며 어디로 가고있는 것인지 알고 싶어서 나는 이토록 멀리, 또오랫동안 헤매고 다닐수밖에 없었다.
나는 「소크라테스」와 그의 가르침 『너 자신을 알라!』라는 말을 거듭 생각해 봤다.
또 통일신라의 고승인 혜초가 된 기분에 젖어보기도 했다. 그는 잘알려진 바와같이 당시의 사상계를 지배하던 불교의 진수를 파악하기 위하여 인도에까지 가서 성적을 순례하고 여행기인 『왕오천축국부』을 남김으로써 민족사상의 발전에 공헌한분이다.
내가 그의 입장이 되어보고 싶었던 것은 감히 그러한 불후의 여행기를 써보고자 했던 충동도 있었지만 더 중요한 이유는 통일된 조국을 가졌던 그가 지성인의 한사람으로 무척 부러웠기 때문이다.
사실 지난 1년간 틈틈이 돌아다녔던 나의 행적을 추적해보면, 고대 그리스에서 발상된 자유와 평등이라는 두개의 이질적인 이념이 2천여년에 걸쳐 각기 지구를 반대쪽으로 돌아 마침내 사회공산주의와 자유민주주의의 형태로 한반도를 두동강낸 경로와 거의 일치하는 것이다.
그 진원지인 델피의 아폴로 신전에 서서 「소크라데스」의 가르침을 음미하고 혜초를 부러워한다는 것은 남의 식민지에서 태어나 동족상잔을 겪다가 반목이 된 당에서 죽고 싶지 않다는 통한의 의미가 들어있다. 또한 거기에는 분단된 조국을 물려받을 의무가 우리에게 없듯이 그것을 후손들에게 물려줄 권리도 없다는 비장한 절규가 들어있는 것이다.
이제 귀중한 안식년휴가를 거의 마무리해야할 시간이다.
지난 1년간 나의 몸과 마음을 사로잡은 단하나의 주제가 있었다면 그것은 이 신전 어디엔가 적혀있었다던 「소크라테스」의 『너 자신을 알라(Gnothi seauton)!』라는 가르침이었다. 그동안 고국에서 날아온 소식은 각계에서 민주화요구가 점점 더 거세지고 있고 통일논의가 새로운 쟁점으로 등장한 가운데 아직도 우리는 혼미의 소용돌이 속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내용이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지금 나는 안개속에 잠겨있는 신전의 이 육중한 돌기둥 곁을 좀처럼 떠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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