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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학도에서 작곡가로 … 꿈은 이뤄진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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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꿈을 접지않고 도전한 보람을 느낍니다. 전공인 화학을 공부하면서도 음악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머리를 떠나지 않았거든요."

31일 막을 내린 제32회 중앙음악콩쿠르 작곡 부문에서 '현악 4중주와 테너 독창을 위한 P/A/R/T'를 발표해 심사위원 만장일치로 1위에 입상한 김택수(26.서울대 작곡과 4년)씨. 그는 3년 전까지만 해도 서울대 자연대 화학과에서 세계적인 화학자가 되기 위해 하루 종일 실험실에 틀어 박혀 있던 과학도였다. 화학 경시대회 입상 경력으로 서울과학고에 특차 합격했고, 1998년에는 호주 멜버른에서 열린 국제화학올림피아드에 한국 대표로 참가해 은메달을 받기도 했다.

인생관이 바뀐 것은 4학년 1학기를 마치고 프랑스 파리에서 1년 간 생활하면서다. 해외 파견 근무를 하고있던 친구 부모님 댁에서 숙식을 하면서 많은 사람들을 만났다고 한다.

"프랑스인들은 전공과 관계 없이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살더군요. 문화대국이 곧 선진국이라는 사실도 실감나게 체험했습니다. 과학자가 되는 것도 좋지만 훌륭한 예술가가 돼 국위를 선양하는 것도 애국하는 길이라고 생각하게 됐죠."

열 살 때 바이올린을 배우기 시작한 그는 예원학교 입시에서 고배를 마셨다. 사업 실패로 택시기사를 하며 어렵게 2남1녀를 키워 온 아버지는 내심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고 한다. 취미가 아닌 전공으로 바이올린을 배우려면 값비싼 악기를 사야하기 때문이다.

김씨는 악기 살 돈이 없어 바이올리니스트의 길을 포기하고 학업에 몰두했다. 그래도 음악에 대한 미련은 떨칠 수 없어 천호동 광성교회 성가대와 선교 찬양단에서 바이올린, 건반악기를 연주하고 편곡을 하면서 아쉬움을 달랬다. 프랑스에서 돌아온 그는 4학년을 한 해 더 다니며 작곡과 수업을 집중적으로 들은 뒤 작곡과 편입시험에 합격했다. "졸업 후 입대하려고 했는데 병역 특혜라는 뜻밖의 선물을 받았습니다. '작곡을 계속 해도 좋다'는 허락을 받은 것으로 알고 열심히 하겠습니다. 당장은 4학년 과제곡인 '피아노 협주곡'을 쓰는 게 급합니다."음악작품을 분석하는 게 재미있다는 그의 휴대전화 컬러링은 브람스의 '교향곡 제1번'. 아르바이트하랴 공부하랴 바쁘게 지내다보니 아직 여자 친구는 없단다.

글=이장직 음악전문기자, 사진=김상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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