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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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삼권분립한 중에서 사법부의 형편이 말이 아니니, 여러 해를 두고본 결과를 치면 사법부의 재판관되는 사람들은 세계에 없는 행세를 하고.』
1955년2월 정기국회에 보낸 이승만 박사의 메시지였다. 그속에는 이런 대목도 있었다.
『다행히 대법원장이 그 폐단을 심히 양해해서 무슨 중대한 문제가 생길적에는 행정부와 협의해서….』
김병노 대법원장은 곧바로 반박하고 나섰다.
『이대통령이 말하는 바와같이 재판에는 간혹 과오가 있을지 모르나, 그렇다고 일선재판에 이를 시달할 수는 없는 것이다. 내가 행정부와 협력해서 무얼했다고 말하나, 그런 일은 과거에도 없었고 또한 앞으로도 단연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1957년12월16일 만 70세로 정년을 맞아 대법원장을 떠나면서 사법부 수뇌들이 모인 자리에서 남긴 말도 감명을 준다. 『사법 종사자가 굶어 죽는 것은 영광이다. 그것은 부정을 저지르는 것보다 명예롭다.』
그무렵 초임법관의 보수는 월 쌀2가마, 10년된 중견법관의 월급이 쌀 3가마 정도였다. 굶어죽는 것이 영광이라는 말은 실감이 난다.
가인(김 대법원장의 아호)이 재임시절, 추운 겨울인데 국민학교 2학년짜리 손자에게 차를 태워주었다. 뒤늦게 이 사실을 안 가인은 호통을 쳤다.
『이 사람아, 이 차가 대법원장거지, 어디 대법원장 손자 차인가!』
우리나라 사법부가 이런 일화라도 갖고 있는 것을 더없이 귀한 교훈으로 새기고 싶다. 지금은 고색창연한 얘기들이 되었지만 그런 일조차 없었다면 도대체 우리나라 사법부는 무슨 교훈을 남겼을지 궁금하다. 요즘 소장판사들이 사법부의 쇄신을 외치는 성명서를 발표한 것을 보며 한편으로 고소를 지으면서도 이제 사법부는 다시 태어나야할 때가 되었다는 생각도 하게된다. 기구나 제도에 앞서 역시 사람이 얼마나 중요한가도 새삼 절감하게 된다. 가인의 흉내만이라도 내는 대법원장이 있었다면 오늘의 대법원이 저렇게 초라해 보이지는 않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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